안숙선씨(46.국립창극단원)는 올해들어 엄청나게 바쁘다. 국악의 해 탓에
행사도 늘어났지만 음반제작에 새로운 공연기획까지 하느라 쉴 새가 없다.

지난3월에는 "구음시나위"를 무대에 올렸고 4월에는 신창극"천명"에서
주인공 복례역을 맡아 이미지를 새롭게 했다. 지난 22~23일에는 동양의
민속악기연주자들이 모여 만든 "유라시안 에코즈" 공연에도 참여,소리를
불렀다. 국립창극단에도 매일 들러 다른 단원들과 입을 맞춘다. 그는 우리
시대 국악계의 스타이다. 스타는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친숙하다.
스타는 따라서 대중들과 함께 호흡한다. 그네들이 필요한 곳에 가서 우리
시대의 음악,우리시대의 소리를 들려준다. 단순한 전통의 계승에서 벗어나
시대의 흐름과 함께 하는 것이 오늘의 스타이다. 안숙선씨가 최근 펼치고
있는 작업들은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안숙선씨는 1948년 전북 남원에서 부친 안재관씨와 모친 강복순씨사이에서
태어났다. 9세때 주광덕씨로부터 첫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주씨가
돌아가자 5촌 외당숙인 강도근씨에게 소리를 본격적으로 사사했다. 강씨는
당시 동편제의 명창. 웅장하고 단순 소박한 것을 특징으로 한 동편제를
기틀삼아 춘향가와 수궁가의 대목들을 배웠다. 그의 소리가 동편제의 영향
을 받은 것도 이때부터인 셈이다. 이후 남원국악원 창극단에 소속되어 어릴
때부터 재능을 인정받다가 67년 서울에 올라왔다. 당시 소리계의 대모로
이름나있던 김소희선생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인 판소리 공부를 시작했다.
김소희씨는 그에게 판소리뿐만 아니라 가야금병창도 배우라고 권해 박귀희
선생에게서 병창을 배웠다.

"두분 선생님들은 때로는 엄하면서도 끔찍이 저를 사랑해주셨어요. 특히
박선생님은 선배들을 제치고 저를 병창전수자로 삼으셨어요. 당시만해도
가야금 병창의 화사한 음률이 소리보다 훨씬 낫게 보였고 인기도 있었어요"
안씨는 그래서 지금은 판소리분야에서 더 이름을 날리고있지만 90년 가야금
병창의 준보유자 23호로 등록되어있다.

안씨가 다시 창에 전력투구하기 시작한 것은 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하면서
부터. 80년대들어 국악바람이 일면서 계면조의 맑고 고운 안씨의 소리는
화사한 외모와 함께 그의 전성기를 예고한다.

"춘향전의 춘향,심청전의 심청등 주역을 도맡아했어요. 86년 적벽가 87년
수궁가 88년 홍보가에 이어 89년 춘향가 심청가를 완창,판소리 5바탕을
모두 완창했습니다. 86년 5월 남원에서 열린 전국판소리명창대회에서는
대통령상을 수상했지요" 그는 국립창극단을 따라 외국순회공연도 여러차례
다녔다.

"지난 88년 유럽8개국 순회 공연을 하면서 팬들을 많이 만나 기뻤습니다.
특히 창이 북소리와 어울리는 것을 보고 굉장히 신기하게 여기더라고요.
최근들어서는 외국에서 간혹 펜레터가 오기도합니다. 그럴때마다 우리국악
이 세계화가 될수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곤합니다"그는 그러나 외국인들이
그속에 담겨있는 해학이나 재담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문화의 차이를
느꼈다고 말한다.

90년대들어 안씨는 소리의 성숙기를 맞이한다. 이때에는 소리의 기교보다
자기자신의 내면과 인간적인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맞부닥친다. 판소리
5바탕만 무대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창극의 새로운 양식을 개발하는데 힘을
기울인다. 작곡도 하고 국립창극단에서 창지도를 맡는등 새 분야에 뛰어
들기도한다.

"창극은 이제 변화해야될 때라고 봅니다. 과거에 불린 것들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이시대의 정서를 담아야 일반인들과 친해질 수 있어요. 관객들은
이제 그런 것을 원하는 것같습니다. 무대에 설때마다 창극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어요" 안씨는 93년 이작업의 하나로 "석가모니"란 곡을 작곡,올
4월에 무대에 올리기도했다.

음반작업도 최근 그가 정열을 쏟는 분야중의 하나.

지난 3월에는 "지음"이란 이름으로 새음반을 냈다. 지음은 음을 알고
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이란 뜻. 득음의 경지는 아니더라도 당대의
명인들이 소리를 얘기하고 벗하는데서 이렇게 지었다고한다. 대금의
서용석씨,아쟁의 윤윤석씨,장구의 김청만씨,거문고의 김무길씨,가야금의
안옥선씨등이 이작업에 함께한 멤버들. 지난해에는 예음문화재단에서
우리나라에서 혼자 부른 민요음반 제1호인 "안숙선의 남도민요"앨범을
냈다. 기회가 있으면 판소리 5바탕 완창음반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안씨의 꿈중 또하나는 소리 악보를 채록하는 것. "구전으로만 전해내려
오는 우리음악은 서양음계에 대비할 수도없고 따로 악보로 채록할 수도
없어 고민입니다. 이곡들을 보전하기위해서는 어떤 형식으로라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학교교육도 가능하고 역사적으로도 보존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라 무대에 서는 것이 천직이다.
7월6일부터 국립창극단이 무대에 올릴 "심청가"의 주연을 맡았고 8월에는
역시 수궁가를 KBS국악관현악단 반주로 완창하는 이색연주가 기획되어있다.

국립창극단의 "심청가"는 새로운 사설을 집어넣고 창을 지도하는등 신선한
형식으로 꾸미기위해 정열을 쏟아붓고있다. 안씨는 매공연마다 성숙된 창,
완벽한 소리를 만들어내느라 오늘도 열심이다. 안씨는 73년 최상호씨(삼원
직물 총무이사)와 결혼,2남1녀를 두고있다.

<오춘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