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담 = 신상민 평집부국장

정근모 전과학기술처장관은 "연구대상"이 될만한 사람이다.

경기고1학년때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문리대물리학과에 진학하고, 24세에
미MIT대박사(핵물리학)로 플로리다대교수가 된 수재라는 점은 접어두더라도
최첨단 과학자답지않게 "과학의 종착역은 신학"이라고 믿고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스 블릭스 국제원자력기구(IAEA)사무총장등 70명의 세계적인 핵물리
학자들의 모임인 국제원자력아카데미 부원장(차기원장 내정자)이기도한
그를 그의 사무실인 대우빌딩9층 고등기술연구원장실로 찾아가 만나봤다.

때가 때인지라 얘기는 북핵으로 시작됐다.

-북한의 핵개발이 어느 단계에 와있다고 보십니까.

<>정원장=북한은 지난85년 NPT(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했지만 가입후 1년
6개월이내에 받도록돼 있는 IAEA의 핵사찰을 지난92년까지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NPT에 가입은 했지만 실제로 매우 오래전부터 조약을 위반해온 셈입니다.

그동안 북한은 7~21 정도의 플루토늄을 갖고있는 것으로 추정돼 왔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핵연료봉에 들어가있던 것까지 재처리하게 되면 50kg
정도의 플루토늄을 확보할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이미 원자탄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정원장=원자탄을 만드는데 가장 큰 난관은 순도높은 플루토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북한이 이 난관을 돌파했으므로 어쩌면 원자탄을 이미 만들었는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설혹 원자탄을 만들었다하더라도
핵실험을 하지않은 이상 실전용으로 개발을 완료했다고는 볼수 없지요.
체크되지 않고 핵실험을 할수는 없습니다.

-IAEA를 탈퇴하는 것과 NPT를 탈퇴하는 것은 별개라고 하는데.. 왜
그렇습니까.

<>정원장=IAEA가 유엔산하기구로서 NPT의 사무국기능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엄격히 따져 별개의 것입니다. NPT는 중국의 원자탄보유(64년)에 자극받아
일본 서독및 분쟁지역국가들이 다투어 핵개발에 나서는 것을 막기위해 그
필요성이 제기돼 지난 70년에 출범됐습니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지금도 NPT에 가입하지 않고 있고, 프랑스
중국도 90년대 들어 가입했습니다.

또 아르헨티나 브라질등은 남미주비핵화조약에 들고 있어 NPT회원국과
동일한 의무를 지고 있기는 하지만 형식상 NPT회원국은 아닙니다.

-NPT는 내년이 시한이지요.

<>정원장=그렇습니다. 70년 공식적으로 출범하면서 25년후 갱신여부를
결정키로 했기 때문에 내년에 NPT체제 연장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미국등
주요선진국들은 현재의 NPT체제를 계속 연장한다는 방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핵문제는 더욱 민감한 문제로 떠오르게 됩니다.

북한의 움직임은 NPT체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고, 그 연장에
중대한 장애가 될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으로 보십니까.

<>정원장=북한은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강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뭔가
미국에서 얻어내겠다는 의도라고 봐야지요. 설마 전쟁까지 할 생각은
아닐것이라고 봅니다.

-박정희대통령 말기에 우리도 원자탄을 개발하려 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만...

<>정원장=그때 나는 미국에 있을때라 아는 바 없습니다.

-박대통령이 재미핵물리학자인 고이휘소박사의 협력으로 원자탄을 만들려
했다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란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됐잖습니까.

<>정원장=이휘소박사는 경기고4년선배로 전공이 핵물리학중에서 기초분야
인 소립자론입니다. 내가 프린스턴대 핵융합연구소에 있을때 이박사도
오펜하이머가 소장으로 있던 같은 대학의 고등연구소연구원으로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잘 압니다.

이박사가 원자탄개발에 깊이 간여했다는 것은 비논리적입니다. 원자탄개발
에는 물리학의 기초분야이론도 중요하지만 핵심적인 것은 공학적인 작업인데
이박사의 경우 전공에 거리가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란 소설은 역시 소설일 뿐이라고
봐야 합니다.

-유신체제때는 한미관계도 원만하지 못했고 월남패망등으로 시대적 여건도
나빠 집권층이 핵개발에 매력을 느낄 소지는 많지 않았습니까.

<>정원장=글쎄요. 외국의 예를 보면 이란 이라크 리비아, 그리고
차우셰스쿠 아래서의 루마니아 처럼 폐쇄적인 독재정권들이 핵개발에
매력을 갖는 성향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지요.

그러나 방위력증강을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생각은 발상 그 자체가
이미 구시대적이라고 정의할수 있어요.

-핵발전소건설은 어떻게 보십니까.

<>정원장=에너지수요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이고 다른 대체에너지개발은
아직 큰 성과가 없는게 현실입니다. 환경문제를 생각하더라도 지금으로서는
핵발전소외에 달리 대안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원자력발전 관련기술은 어느 수준입니까.

<>정원장=건설.운전기술이 모두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월성1호기의 가동률이 세계최고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과기처장관으로 계시다 핵폐기물 처리장건설에 반대하는 안면도주민들의
데모로 물러나셨는데.. 어떻습니까. 앞으로는 핵발전소도, 핵폐기물처리장도
건설하기가 쉽지 않을것 같습니다만...

<>정원장=안면도때는 확정도 되기전에 보도가 돼 문제가 확대됐어요.
제2원자력연구소와 핵폐기물처리장을 함께 세울 구상이었는데... 그렇게
됐으면 그 지역발전에도 보탬이 됐을 겁니다.

핵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감때문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압니다만
절대적으로 안전하고 핵폐기물처리장은 일반쓰레기처리장과 달리 병원처럼
깨끗하다는 것을 지역주민들이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어쨌든 아직도 핵폐기물처리장을 건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문제입니다.
현재는 핵발전소의 폐기물들을 각발전소에 쌓아놓고 있는 상황인데 마치
집은 짓고 화장실은 짓지 않은 셈입니다.

-학자로 연구에 종사하다 과학원부원장 한국전력기술사장 과기처장관등
연구보다는 기술행정적인 일쪽으로 전환하셨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학자는 계속 학자의 길을 가야하는것 아니냐고 보는 이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만...

<>정원장=과학기술이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시대 아닙니까. 이런
시대에 과학기술에 대한 조예없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과학기술사회를 리드할 사람은 과학과 기술투자의 우선순위를 얘기할수
있는 경험과 식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과학기술인력 연구인력이
국가운영과 기업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요.

연구로써 결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연구과제가
무엇이고 개발된 기술은 어떻게 보급하는 것이 합당한지, 그 방법을 찾아
내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또 그런 일은 연구경험이 있는 인력, "기술경영"에 대한 식견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합니다.

또 물리학의 경우 연구는 20대가 피크라는게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과학원설립의 주역인 것으로 아는데... 그때 서울대공대등 기존 이공계
대학교수들의 반발은 대단했었지요.

<>정원장=서울대공대교수중 한분은 내게 "역사에 오점을 남길 일을 왜
하느냐"고 얘기했는데 나중에는 그 양반자신이 과학원일을 했어요.

과학원의 석.박사과정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을 제지하는 교수들도 많았지요.

-교수들이 왜 그렇게 과학원설립을 반대했습니까.

<>정원장=기존 대학을 지원하지않고 왜 새로운 기구를 만드느냐는게
반대논리의 골간이었습니다. 정부의 문교예산으로 과학원을 설립하려는
것이 아니라 외국원조와 경제개발예산으로 과학인력을 양성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해도 반대론이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외국유학을 보내지않더라도 우수한 과학기술인력을 양성할수 있게 국제
수준의 대학원을 만들자는 내 구상을 한미 양국정부가 받아들였기 때문에
설립된게 과학원인데 내 개인적으로는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설립작업을 도맡아하고 초대 부원장이 됐는데, 사사건건 학사운영을
정부에서 간여해 말을 잘듣지 않았더니 부원장자리를 없애더군요.

-경기고 1학년에서 2년을 월반, 서울대에 진학한 것을 무척 후회한다는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만.

<>정원장=고등학교 3년과정을 정상적으로 보내지 않은 것을 나는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필요하고 정상적인 단계를 밟아 올라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나는 고교때 월반을 하지않았더라면 지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좀더 탄탄하게
다질수 있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좀 더 클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을 종종
합니다.

-신앙간증등 교회활동이 무척 왕성하신 것으로 압니다만... 핵물리학자
답지않다는 얘기를 듣지 않습니까.

<>정원장=사람이 안다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과학적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학문을 하면서 뼈저리게 인식했습니다.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신의 섭리를 느끼게 됩니다.

-신의 존재를 느끼셨다는 것과 기독교인이 됐다는 것은 별개 아닙니까.
그 신이 다른 종교의 신이 아니라 왜 꼭 기독교의 신이어야하는지, 어떻게
설명하실수 있습니까.

<>정원장=그 부분이 바로 신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