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승 철 <국민은행 이사장>

은행의 주인만들기와 관련하여 최근 논의되고 있는 금융전업기업군의
발상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하나의 측면은 "금융전업"의 명칭이 함축하는 바와같이 금융자본에
한하여 금융기관 소유에 참여케하고 산업자본과 같은 비금융자본은
여기에서 배제시킨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측면은 "금융기업군"의 명칭이 표시하는바와 같이 은행 증권
보험 단기금융등에 걸쳐서 금융그룹을 형성하여 금융기관의 업무영역을
복합적으로 연계 구축한다는 점이다.

먼저 은행의 소유구조에 있어서 산업자본을 배제하자는것은 산업재벌의
은행지배에 따르는 은행의 사금고화를 막자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산업자본인 순수금융자본만을 은행소유에 참여시키자는 의견이 나올
수가 있겠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넘어가야 할점은 은행의 공공성 및
중립성 유지와 관련하여 금융자본은 반드시 "좋은사람"(good guy)이고
산업자본은 "나쁜사람"(bad guy)이라는 이분법이 갖고 있는 위험성이다.

왜냐하면 비산업자본가에 은행소유권이 맡겨지는 경우에도 소유권과
경영권의 남용여하에 따라서는 자금공급의 편파적인 운용등에 의하여
은행의 공공성과 중립성은 얼마든지 침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행의 공공성 확보는 은행소유권이 산업자본가에 가느냐, 혹은
비산업자본가에 가느냐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소유권의 남용을
어떻게 방지하여 중립적인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느냐에 달려있다.

여기에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는 것이 단일지배주주 대신 일정수
이상의 집단지배주주제를 도입함으로써 주주간의 상호견제에 의한 소유권
의 남용을 막고 은행주인으로서의 경영감독을 통한 책임경영체제를
실현하는 것이다.

참고로 독일의 경우 내부경영진으로 구성되는 집행이사회(행내이사회)
와는 별도로 대주주 및 공익대표들로 구성되는 감독이사회(Supervisory
Board.행외이사회)가 있어 이들이 은행장을 포함한 경영진의 선임과
경영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다.

이러한 집단지배주주제에 의하여 전업군오너 의 횡포도 막을수 있고
이들은 또한 투자자입장에서 은행경영을 감시 감독하는 기능도 할수가
있다.

이러한 감독이사회는 일부에서 제시하는 대주주협의회와 같은 느슨한
조직이 아니다. 의결권을 행사하는 공식 의결기구이며 현재의 은행장
추천위원회같은 일회용의 급조위원회와도 다르다.

투자자대표의 상설위원회로서 경영진을 항시 관찰 감독하고 또한 보호하는
기능을 하게된다. 미국은행들의 이사회(Board of Directors)도 이와
유사한 기능을 보유하고 있음은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바와 같다.

다음 "금융기업군"에 대한 문제이다. 금융기관의 업무영역은 은행 증권
보험 단기금융등의 분야에 걸쳐서 전문화되어 있으면서도 상호간 밀접한
보완관계에 있다.

금융겸업주의(Universal Banking)가 아니고 금융전업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의 경우에는 분야별 개별독립법인으로 영업을 하면서도
지주회사제도나 자회사형태에 의하여 하나의 금융그룹을 형성하여
고객들에 대한 금융서비스를 복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거래기업들에 대한 입체적인 지원과 국제금융시장
에서의 종합적 경쟁력확보를 위하여 바람직스러운 발전방향이라고
생각된다.

공정거래법상 금융지주회사가 허용되어 있지않은 우리나라에서는 분야별
자회사 설립방식에 의하여 금융그룹이 형성되고 있는 과정인데 이
경우에도 산업재벌그룹의 형성과정에서 볼수있었던 상호출자방식에 의한
문어발식 확장은 미리 방지돼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상호출자에 의한 계열회사들의 설립은 자본금의 가공적인
확장을 가져올뿐 아니라 특히 금융산업의 경우 관련기관간의 방화벽
(fire walls)이 무너짐으로써 한 기관의 경영부실이 타기관으로
비화하여 금융그룹전체의 신용위기를 초래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행혹은 모사에 의한 일방적인 자회사의 설립이나 인수의 경우
에도 은행이나 보험회사는 제조기업들과는 달리 자기자본비율이 낮아
대부분의 자금을 남의돈(은행예금자나 보험가입자들의 돈)으로 충당한다.

때문에 단순한 자산운용과 증식을 위한 포트폴리오 투자가 아니고 경영권
지배를 위한 소유투자의 경우에는 모행 또는 모사의 자기돈(자기자본)
범주를 넘어서는 자회사설립이나 인수에 대하여는 전체 금융시스템의
안전을 위하여 어떤 한계가 그어져야 할 것이다.

이와같이 금융전업기업군의 내용을 "금융전업"의 측면과 "금융기업군"의
측면으로 분해하여 들여다 볼때 은행의 주인만들기와 관련하여 금융전업
기업군을 섣불리 도입하게 되면 자칫 금융지배만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특혜 그룹만 출현시킬 우려가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은행의 주인만들기는 금융전업기업군의 도입과는 연관시키지 말고
개별은행별로 주인을 찾아 주어야 할 것이며 금융기업군은 자격요건과
능력을 갖춘 금융기관들이 자력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형성토록
정책당국이 유도하여 주는 것이 바람직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금융환경의 변화에 의하여 우리나라 은행들은 앞으로 2~3년내에
지난 20~30년간의 변화를 능가하는 가파른 변모를 일으켜야 하는
격변기에 놓여있다.

합리적이고 순리에 맞는 은행소유구조가 빠른 시일내에 정착되어
책임경영체제의 확립과 은행경영권의 안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