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과 "활쏘아"는 순수한 우리 말이다. "계림유사"에 "궁을 활이라 한다
(궁왈활)", "쏘는 것을 활쏘아라 한다(사왈활색)"고 기록되어 있는것을
보면 우리 고유의 말인 것을 알수가 있다.

"화살"역시 활쏘아에서 유래한 우리 말로 이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 시
또는 전이다.

우리나라 활의 역사는 일찌기 고조선의 단궁에서 비롯되었고 진서 숙신전에
의하면 단궁은 단궁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힘은 위력적이어서 능히
국방의 주무기 구실을 하였다 한다.

고구려를 침략한 당태종의 사인이 안시성에서 맞은 화살때문이었다는
일화가 남아 있을 정도라고 할수 있다. 따라서 활을 잘 쏘는 선사 또는
명궁을 수없이 배출하였다.

고구려의 동명성왕은 일명이 주몽이라 하는데 주몽이란 선사자를 가리키는
부여말이다. 그는 22세때 비류왕과 활을 겨루어 100보 밖의 옥지환을
맞혔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고려조 문종때 유현은 대동강건너 대안까지 활을 쏘았다고 하고 조선조서는
태조때의 이지란, 세종때의 유응부, 선조때의 이순신 황진 김명원등
선사자가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로 많다.

활이란 세계적으로 민족의 풍토나 풍습에 따라 그 사용방법이나 모양에
특징을있게 하므로 3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다.

지중해형 몽고형 해양형등으로 유형화 할수 있는데 우리의 국궁은
몽고형에서 전해진 것이고 양궁은 지중해형에서 발전된 것이다.

우리나라서는 1959년에 석봉근씨가 서울 남산중턱에 있는 석호정(국궁
활터)에서 혼자 연습한 것이 기록에 남아있고 68년9월의 제49회 전국체육
대회에서는 양궁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79년 서베를린에서 열린 제30회 세계궁도선수권대회에서 우리의 여자팀
김진호선수가 60m,50m,30m의 개인.종합경기를 석권하면서 단체우승이라는
감격을 안겨준 기억은 아직도 우리기억에 생생하다.

역시 동이민족이라는 혈맥이 살아 있는것 같다. 어제 청주 김수녕양궁장
에서 제1회 국제양궁대회및 개장기념 오픈대회가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시오큐대회나 독일의 오픈, 러시아의 스프링애로대회등 세계
정상급대회의 출전국이 5개국내외였던 것을 감안하면 34개국에 260여명의
선수가 참가했다는 것은 오픈대회로서는 사상 최대규모라 할수 있다.

80년대후반부터 5년간 세계정상을 차지했던 김수녕의 이름을 딴 전용
경기장이라는 점에서 한층 의미있는 일이다.

세계의 쟁쟁한 선수들이 모두 출전한 "별들의 전쟁"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