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은 정부측이 발표한 바와 같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국가들에 대한 4각외교를 마무리한다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경제의 지역주의화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동북아협력의 틀을
제공했다는 면에서도 그 의미를 제조명 해볼 필요가 있다.

향후 국제경제질서의 형성과 관련된 논의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오류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 하나는 국제경제관계가 UR로
상징되는 국제주의에 의하여 유도될 것이라는 사고다.

또 다른 하나는 부분적인 지역주의화경향은 APEC(아.태경제협력체)의
기능강화를 통해 상쇄할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향후 국가간의 경제관계가 새로운 세계무역기구(WTO)체제하의
"국제주의"적 규범에 의해 지배될 것으로 낙관하기는 어렵다. 최근의
미국과 일본간 무역마찰이 보여주듯이 "국가주의"는 앞으로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EU의 출범, NAFTA의 발효 AFTA의 태동은 세계의 각 대륙에서
지역주의에 입각한 분업질서가 앞으로도 더욱 강화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UR의 타결에도 불구하고 국제경제관계는 국가(민족)주의 지역주의
국제주의라는 다분히 상호갈등적 3각구도에 의하여 조건이 지워질
것이다.

특히 세계경제의 지역화현상은 앞으로 한국경제가 국제화전략을 효율적
으로 추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지역단위의 경제조직이 외형적으로는 개방된 지역주의를 표방하고있으나
실제적인 정책투입에 있어서는 역외국가에대한 차별성을 전제로 하고있다.

국제정치 경제질서의 단절화현상은 또한 헌팅턴이 지적하는바와같이 종교
문화적 가치를 저변으로 하는 상이한 문화권간의 갈등 대립구도속에서
더욱 심화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형성된 APEC는 상당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역내국가들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데 상당한 한계를 갖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APEC는 회원국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서 뿐만아니라 주로 미국의
경제적 외교.안보적 역내 주도권행사라는 전략에 의해 움직여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과 호주를 제외한 ASEAN 일본및 중국등이 APEC에 대하여 미온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앞으로 발전의 격차및
문화적 이질성이 큰 20여개의 회원국으로 확대될 경우 이들 국가의 공동
보조에 의한 구속력있는 분업규범을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예를들면 UR의 타결과 함께 활발히 거론되고 있는 GR나 BR등은 비단
국제적 차원에서 뿐만아니라 유럽연합과같은 지역단위에서 추가의
"지역규범"으로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경우 발전의 격차가 극히 현저한 APEC의 구도속에서 역내국가들이
공동의 환경보전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여 지역단위의 정책조정과정에서
적절한 협상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동(북)아국가간의 지역협력을 제도화시키는 작업이
중요하다. 혹자는 이 지역 국가간에 존재하는 문화적 제도적 이질성을
들고있으나 이 문제는 APEC의 경우보다 훨씬 용이하게 극복될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를 제외한 역내국가들이 유교문화의 친화력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호경제발전에 필요한 보완적 요인들이 이 지역에 농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도 동북아 지역은 그러한 보완성을
강하게 보유하고 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자연적 경제지대"의 성격을
갖고 있다.

동북아지역 국가들간에는 또한 80년대 중반이후 들어서면서 역내무역과
직접투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 미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는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다.

기능을 발휘하는 동북아지역 협력체제의 구축없이 UR의 경쟁과 개방
규범이 적용될 경우, 특히 한국의 중소기업은 감당하기 어려운 경쟁의
압력에 노출될 것이다.

중국이 연내 GATT에 가입하고 95년부터 WTO의 적용을 받게 되면 국내
시장에 대한 중국상품의 대량유입은 비단 농업부문에서 뿐만 아니라
제조업에서도 경쟁력이 취약한 국내 중소기업의 존립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

근년에 들어서면서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인구 6,200만의 광동성과 인구 8,500만의 산동성은 지난해 20%를
상회하는 기록적인 성장률을 보였다.

우리의 중소기업은 최근 대기업(집단)편애주의적 정책의 결과 그
부도율이 기록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존립의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는 터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경제의 가속적인 경쟁력강화는 안팎으로 우리의
중소기업을 위협하는 "시한폭탄"이 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렇게 볼때 동북아협력체제를 구축하고 그러한 틀속에서 한중간 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협력의 장을 마련하는 작업은 국내 중소기업의 대중
진출을 촉진시키는데 있어서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국가간의 협력강화는 이상과 같은 문제의 긴박성과 그 해결을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하며, 이러한 작업은 APEC의 한계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