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멕시코를 방문하고 서울행 비행기를 타기위해 로스앤젤리스에
도착하던 날 재클린의 부음을 들었다. 매스컴은 온통 재키의 뉴스로
가득차 있었고 그녀를 애도하는 분위기가 시가지에 퍼져 있었다.

공식적인 그녀의 이름은 재클린 오나시스다. 그러나 매스컴은 그녀를
재클린 캐네디로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마지막 가는
그녀의 길을 너무도 아름답게 미회시켜주고 있었다.

백악관은 그녀를 역대 어느 대통령부인도 따를수 없는 위대한 존재
(Great First Lady)라고 입이 마르도록 칭송했다.

힐러리여사는 재클린을 경의로운 백악관의 옛주인이라 회고하면서 손수
재키가 사망한 뉴욕의 아파트로 달려가 시신을 운구하여 알링턴
국립묘지의 케네디무덤옆에 안장시켰다.

재키가 오나시스에게 갔을때 미국은 그녀를 비난했다. 당시 케네디가
만이 그녀를 이해하는 듯했다. 그녀는 케네디의 급작스런 사망에
당황했고 외로웠으며 잠시라도 미국을 떠나 있고 싶었을 것이라는게
옹호의 내용이었다. 그러나 재키가 죽은 지금 미국 전체가 그녀를
애도하고 생전의 그녀를 아쉬워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의 문화와 미국의 그것과의 큰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조선시대에 여자가 재혼을 하면 그 집안의 호적에서 없어지는
것은 물론 후손들이 벼슬길에 나갈수 없었다.

친정 아버지는 개가한 따을 둔 수치심 때문에 자살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현상은 옛날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도 우리의 의식에 깊이 작용하고
있어 개가에 대한 일반의 견해는 부정적임을 부인키 어렵다.

세계를 떠들석하게 만든 재키의 죽음과 그 죽음을 대하는 미국을
지켜보면서 나는 죽은자에 대해 후한 미국인의 심성을 확인할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심성배후에는 한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권리가 미국
전체의 자존심보다 우위에 자리함도 확연히 느낄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