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이 종전과 다름없는 위상으로 존속하고 있으니 웃지못할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왕정복고를 위한 대정변과 막부 타도전에 뛰어들어 혁혁한 공을 세워서
유신정부의 수뇌부가 된 사람들도 자기네 번에서는 여전히 번주인
다이묘 뿐 아니라, 가로들의 한낱 부하에 불과한 신분이었다.

그래서 중앙정부의 거두들이 자기네 번으로 가면 지방정부에 불과한
그곳의 책임자와 간부들에게 머리를 숙여야 하는 웃지못할 사태가
벌어지곤 했다. 한마디로 위계질서가 뒤죽박죽이었다.

"도대체 그런 일이 있을수 있습니까? 그래가지고 어떻게 중앙정부의
권위와 우리의 위신이 섭니까? 당장 번의 제도를 폐지하여 다이묘를
없애야 합니다"

회의석상에서 번의 문제에 대하여 가장 강경하게 발언하는 것은
오무라마스지로였다. 그는 번의 문제뿐 아니라, 국정 전반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앞질러 나가는 개혁을 서슴없이 주장했다.

"다이묘들이 영지와 번민을 조정에 반납하도록 조치를 취한 다음 번군
이라는 일종의 사병에 불과한 것을 없애고, 모든 군사를 천황폐하의
군대로 개편하는 병제의 일대 개혁을 단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모든 영토를 중앙정부의 직접지배하에 두며, 사농공상
이라는 신분제도를 폐지해서 사민평등을 실현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족만 무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남자면 누구나 총칼을 들수
있도록 징병제도를 실시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식이었다.

땅뿐 아니라, 사람들까지도 다 번주의 소유물과 다름이 없었던 시대에
그와 같은 주장을 거침없이 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의 주장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래서 오무라는 보수적인
세력으로부터 위험인물로 낙인이 찍히다시피 하였다.

유신의 핵심주체인 사이고와 오쿠보, 그리고 이와쿠라는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은 우리가 목표로 할 이상이기는 하지만,
당장 실행에 옮기면 대혼란이 야기된다고 신중론을 폈다.

점진적으로 한가지 한가지 실행해 나가야 한다면서 그의 일시에 밀어
붙이는 식의 혁명적인 과격한 방식을 견제하였다.

우선 판적봉환(판적봉환)이라는 조치부터 실행에 옮겼는데, 판은 판도
즉 영지를 뜻했고, 적은 호적 즉 주민들을 뜻했다. 그러니까 번의 영지와
번민을 천황에게 되돌리는 일이었다.

그 일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도 명령을 내려 강요하는 게 아니라,자진해서
봉환을 하도록 유도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