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에도 관존민비-". 이상하게도 한국의 경제연구소에는 이런
구습이 적용된다. "민간경제연구소들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국책연
만큼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

이건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나름대로 괜찮은 연구결과를 내놓더라고 국책연보고서에 비해 평가절하
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선입견과 악조건 속에서도 싸울 수 밖에 없는게 민간연이다.
틈새 비집고 공략 그러나 어디고 틈새시장(Niche Market)은 있게 마련.
민간연은 "민간"이기 때문에 이시장을 공략할수 있다고나 할까.

국책연의 구태의연한 사고로는 창안해내기 힘든 참신한 아이디어가
여기서 번뜩인다. 환경변화에 유연한 "민간"의 특화력등을 무기로
"히트상품"을 내놓고 있다.

대우연이 지난89년 개발한 "대우경기선행지수"는 민간연의 성공작
원조로 꼽힌다. 대우연이 이지수를 만들때만 해도 경기선행지수를
발표하는 기관은 국내에서 통계청뿐이었다.

그러나 통계청의 선행지수는 발표시기가 해당 월로부터 보통 3개월이
지난 뒤여서 "선행"이라는 말이 무색했다. 10개의 구성지표중 두세개는
언제나 늦게 집계되는 탓이었다.

대우연은 이런 폐단에 착상했다. 구성지표를 총통화(M2)수출신용장내도액
등 핵심적인 5개로 축소한 것이다. 선행지수가 통계청의 것보다 2개월정도
먼저 나올 수 밖에.

이지수는 정확도에서도 손색이 없다는 점이 입증되면서 관심을 모았다.
통계청에 비상이 걸린건 당연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대우연에 "선행지수
발표를 말라"는 유무형의 압력을 넣기도 했다.

삼성연이 지난91년말부터 분기별로 발표하고 있는 "소비자 태도지수"도
민간연이기에 고안해 낼 수 있었던 "실용상품"이다.

전국의 소비자 1천2백여명을 대상으로 국내경기 생활형편 물가 소비지출
등을 일일이 전화로 물어 산출하는 지수다. 소비자들의 "따끈따끈한"
현실감을 반영하다보니 체감경기상태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연구기관에선 오래전부터 이런 지수를 발표하고
있으나 국내에선 삼성연이 유일하다. 결국 이지수는 한은이나 전경련의
기업경기실사지수(BSI)와 함께 현장경기를 가늠할수 있는 살아있는 지표로
쓰이고 있다.

통계청서 압력도 민간연은 각종 정기간행물에서도 특유의 순발력을 발휘,
상품화한다.

여기서는 우선 럭금연의 "LG주간경제"가 발군이다. 이 주간지는 지난86년
계열사에 최신 경제.경영정보를 소개할 목적으로 발행됐다. "내용이 썩
좋다"는 호평이 계속되자 연구소측은 아예 유가지화 했다.

현재는 약6천부가 팔린다고 한다. 한부에 2천원이니까 판매액만 연간
5억여원. 인건비를 제외한 순수이익은 약3억여원에 이른다. 연구소로선
적지않은 수입원이 된 셈이다.

내용은 국내경기흐름이나 해외경제 최신경영동향등을 연구원의 시각으로
심층분석한게 주류다. 주간지답게 시사성있는 주제를 아카데믹한 테마와
균형있게 다뤄 일반인도 부담없이 읽을수 있다는게 특징이다. 이 주간지는
내년이면 1만부정도로 판매부수가 늘어날 것이라는게 럭금연의 자체분석.

이밖에 신한종합연구소의 "일본경제동향"(격주간),삼성연의 "삼성경제"와
현대연의 "기업경제"(월간)등도 나름의 성가를 올리고 있는 간행물들이다.

민간연의 장기는 또 있다. 각종 회원제 포럼 운영이 그것이다. 삼성연이
1백12개의 회원사를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는 "SERI클럽"(SERI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영문약자).

1백만원씩의 연회비를 받고 가입사에 정기간행물 등 각종연구보고서와
경영정보를 제공한다. 월1회의 조찬세미나 참석권도 주어진다.

럭금연의 "LG경영인포럼"도 비슷한 성격이다. 주로 럭키금성그룹 계열사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이 모임은 정부측 정책입안자들을 초청해 시의성
있는 주제의 강연을 듣는다.

토론 기회도 갖는다. 럭금연은 이를 외부인에게도 개방, 회원제로 운영
한다는 복안이다. 초기시장의 이득 물론 이같은 성공작품들은 국내
민간연의 역사가 길지 않은 만큼 이제 걸음마단계에 불과한게 사실이다.

또 히트를 친 것도 다양한 지식상품이 부족한 우리 현실에서 "초기시장의
이득"을 톡톡히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별산업및 해외경제동향에 대한 분석이나 오피니언리더 교육등
틈새시장에선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목이다. 민간연이
설땅도 그리 좁지만은 않다는 뜻도 된다. 거시경제나 정책연구에선
국책연에 다소 뒤지더라도 말이다.

다만 앞으로 문제는 민간연이 이들 "제품"의 질과 공신력을 얼마나
유지해 고유시장을 어디까지 넓혀 나갈수 있느냐에 모아진다. 그에 대한
답은 한가지다. 단순한 돈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책연의 사각지대는
우리가 맡는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정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