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세계가 헤쳐 모인뒤 북한 이라크등 소수 이단국을 제외하고는
국가간의 장벽이 무너졌다. 많은 나라를 망라하는 관계는 국제화보다
세계화다. 현재 유엔회원국은 1백86개국인데, 존 나이스비트는 신저 "글로벌
패러독스"에서 나라수가 서기 2000년에 3백개, 그뒤 얼마안가 1천개국이
되리라고 예언한다.

컴퓨터통신의 급격한 보급에 따라 국민국가의 기능은 약화하지만 그 반면
고유의 언어와 화폐보유를 갈망하는 각 종족들이 상징적이나마 독립성취를
희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개인과 소기업의 역할이 증대하는 것과는
상반된 흐름이라고 그는 이책에서 꿰뚫어보고 있다. 그의 예단에 과장이
있을진 몰라도 대조류는 분명 그 방향이다.

이 시대조류에 과연 한국이라는 배가 순항을 할수 있을까, 아니면 역류
할까, 그것이 문제다. 그에대한 답이 아직은 엇갈린다. "국제화! 경쟁력
강화!"하는 선장이나 항해사들의 외침소리는 청신호다. 하지만 승무원을
포함한 승선인원 대부분의 실제적 사고와 행동양식은 적신호일수 있다.

국민의 시청각기능을 대신하는 매체를 보자. 미국신문을 계속 구독하면
지구전체가 마치 한개의 공처럼 머리에 떠오른다고 한다. 그만은 못하지만
일본신문에서는 가령 서쪽으로 최소한 인도아대륙까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한국신문은 어떤가. 지면의 격증에 비해 시야의 확대는 더디다. 국내문제
특히 정치인의 동정은 기침소리까지 자세하지만 먼나라 일은 큰사건이나
터져야 갑자기 기사가 커지고 평소엔 동남아 보도에도 인색하다. 독자가
그것만 읽어선 세계 돌아가는 형편을 일관하여 파악할수가 없다. 방송
또한 오십보백보다.

국력 자장의 넓이, 인구구성의 다양성, 교류의 폭등 국민시야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많다. 언론내부의 여건도 작용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요소는
한나라의 역사 문화적 배경과 그 결과로서의 가치체계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가장 먼저 지적돼야 할것은 교육이다. 국민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역사교육을 반복해 받아왔지만 머리속에 남은 역사인식은 종적인
것일뿐 횡적으로는 단절되어 있다. 역사교과목이 국사 동양사 서양사로
철저히 나누어져 횡적 연결없이 배워왔기 때문이다. 최근세에 내려와야
중국이외 나라들과의 관계가 편린으로 연결된다. 항차 단군시대에 이르러서
는 새까맣게 먼 신화시대로만 비친다.

단기원년은 서기전 2333년이다. 세계사 년표를 들여다보면 이미 그 12세기
앞서 나일강유역에 도시국가 노모스가 건설되었고 2세기앞서 인더스문명의
시발, 1세기앞서 메소포타미아의 통일이 이루어졌다. 이 이역의 역사를
한국사와 연결해 생각하는 관념조차 우리에겐 결여돼 있다. 말하자면 역사를
바라봄에 있어서 외눈이나 진배없다.

박혁거세의 신라 건국(BC57년), 그 1년전 시저의 갈리아원정, 15세기
훈민정음창제와 아메리카대륙의 발견, 1592년 같은해의 임진란 발발과
셰익스피어의 "헨리8세"출간, 이듬해 누르하치의 여진족통일등등 동서양사를
연결해 보면 세계사의 흐름이 입체로 들어온다.

어느나라가 앞서고 뒤선 것은 중요하지 않다. 비록 불리하더라도 진실을
숨겨선 안된다.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한지 22년지난 서기 449년에
브리타니아에 침입, 829년에야 잉글랜드왕국을 세운 앵글로색슨족이 역사
짧다고 부끄러워 하진 않는다. 7세기에야 나라형태를 갖춘 일본은 당당한
경제대국이 돼 있다.

역사교육의 과제는 진실접근과 과거를 종합하는 안목의 배양이라 본다.
사관은 진실을 바탕해야 객관적인 설득력을 갖는다. 아전인수로 왜곡시킨
사관이 후환을 낳는 사례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아온다. 좁은 시각의 역사관
에 반대하는 "전체사학파"도 있다. 프랑스의 아날학파, 영국의 "과거와
현재"지 학자그룹은 영국 청교도혁명의 성격을 해석함에 있어 같은세기
동서양 여러나라의 기후와 곡물수확간의 관계를 조사, 17세기적 공통성의
추출을 시도했다.

역사의 해석은 시간을 요한다. 요즘 방송사극 "한명회"에 나오는 성삼문등
사육신이 역적누명을 벗는데도 숙종대까지 2백년이 걸렸다. 금주는 5.16
쿠데타 33주년에 5.18민주화운동 14주년이다. 그에 대한 해석도 몇차례씩
뒤바뀌어 오고 있다.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는 교훈을 역사는 가르쳐 준다.

국민학교영어교육 실시등 바야흐로 세계화 전략수립이 한창이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폐쇄성 배타성 쇼비니즘적 인자가 우리들
혈관속에 흐르고 있음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그 연후에 장기전략을 짜고
쉬운 일부터 단계적으로 밀고 나가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첫째는 각급 학교의 역사교육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역사교사의 담당을
지역기준아닌 시대별로 나누는 시도가 필요하다. 물론 용이하지는 않다.
대학에서의 전공구분 재편이 선행돼야 할것이다.

그러나 하려들면 최소한 사범계라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먼저 전공이
분류되지 않은 초등교사의 수업방법을 수정하는 일은 그리 어렵진 않다고
본다.

둘째 근본적이면서 간단한 것은 관용어를 바꾸는 노력이다. 매체에서
"우리나라"라는 천편일률적인 용어를 "한국"으로 대체하면 어떨까. 한때
그런 시도가 꽤 세를 얻었으나 유신시대 "국적없는 식자"라는 권력자의
질책에 찔끔하고는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역시 국수주의적인 "와가구니"
표현에 푹 젖어있던 일본언론에선 최근 "일본"이라는 용법이 눈에 띈다.

학술논문도 한가지다. 하나같이 "우리나라의 xx제도 연구"하는 식이다.
그런 제목의 연구에서 객관성은 기대하기 힘들다.

나라를 사랑함은 미덕이다. 그러나 한국어머니들의 자녀사랑처럼 맹목적
이어선 안된다. 세계화도 아주 작은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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