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참 오래도록 빠른 성장만 생각하며 살아 왔다. 그러다보니 전체
소득은 확실히 늘어났다. 그런데 삶의 질은 과연 얼마나 좋아졌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잘 산다면 삶의 질도 좋아진 게지. 그게 무슨 소린지 의아하게 여길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허구한
날 길거리에서 괴로움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도로교통에서이다.

나는 서울과 인접한 도시의 한 아파트에 살면서 서울로 출근을 한다.
그런데 아침이면 그야말로 "전쟁"을 치른다. 7년전에 처음 이곳에 와서
살때만 해도 20분이면 회사에 당도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

물론 노상교통으로는 도저히 도착시간조차 가늠할수가 없어 지금은 두
발로 걷는 "자가용 11호"(?)로 전철역까지 가서 출근하면 한 시간이
걸린다.

이러니 참 걱정이다. 나만 이렇게 시간을 버리는 것이 아닐 터이고
수많은 사람이 밤낮으로 길거리에서 시간을 버린다.

아침에 차가 빽빽이 들어찬 아파트마당을 곡예를 하듯 요리조리 빠져
나와 큰길로 나서면 버스와 택시와 자가용이 얽히고 설켜 있다.

도무지 소통이 안되고 엉금엉금 기고 있는 때가 허다하다. 이 상황은
비단 출근시간만이 아니라 이제는 시도 때도 없다. 서울의 도로는 "교통"
이 아니라 "고통"이라는 말이 수긍이 간다.

아직도 차 없는 사람이 차있는 사람보다 많건만 차있는 사람은 차 없는
사람의 고충 따위는 별로 생각지 않을 뿐더러 국민 전체를 돌아보아야 할
정책마저도 차있는 사람에게 맞춰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작은 예로 아파트에 살다 보면 아파트 마당을 주차장으로 쓰는데, 이는
공유면적이니 차없는 사람과 차 가진 사람이 구분해서 사용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어야겠지만 최근 말만 오가고 있을 뿐 이용자만 덕을 보고 차
없는 사람은 차 때문에 빙빙 돌아서다녀야 하는 판이다.

한편 턱없이 꽉차 버린 도심으로 대형 승용차는 왜 그렇게 밀려들고
있는지 알수가 없다. 이러니 수송이 막혀 경제활동도 원활하지 못하고
자연히 생산성도 떨어진다.

어떤 교통 전문가는 우리의 교통은 이미 전쟁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빠졌으니 기본전략을 세우고 전문가 진용으로 돌격을 해도 이겨낼까 말까
한 상황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사정이 이 지경인데도 정부의 교통정책이나 시민의 대응방식은
느슨하기만 하다. 교통을 살려야 나라를 살릴수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제부터라도 시민이 앞장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방법을 제시한다면
온전히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지라도 피해는 줄여나갈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민이 분발하면 정부도 분발할 것이다.

그러나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성만으로는 자칫 혼란을 가중
시킬 수 있다.

의욕만 가지고 전쟁에 이길수 없으니 교통문제의 맹점이 무엇이고
함정이 무엇인지 알아서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책이 필요할 것이다.

어떻게해야 교통혼잡을 피하고 시민의 교통수요를 충족시키며 공해문제,
나아가 국가재정을 충족시킬수 있을지에 대한 지혜의 열쇠는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용기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신념에
있을 것이다.

"남들 다 가진 것 나는 왜 못가지나"라는 비교심리 때문에 전세보증금
빼서 차를 사 출퇴근에 쓰고 쉬는 날 가족나들이에 쓴다면 차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론 이런말이 공정하려면 대중교통이 육성되어 국민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교통수단이 보장되어 돈 없어 자가용을 살수 없거나 몸이
불편해서 운전을 할수 없더라도 가고 싶은 곳에 편하고 빠르게 갈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버스가 자가용보다 편할리 없겠지만 버스타는 것이 경제적이니
버스를 이용할 것이다.

오늘 꼭 한번 생각해 보자.

나는 꼭 차가 필요한 사람인지, 차가 있기 때문에 혹시 우리모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는것은 아닌지를. 차가 있어서 혹시 사는 재미를
반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차 없는 재미는 없을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