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에노모토 군사의 총공격 앞에 에사시성도 무너지고 말았다.

번주인 노리히로는 구마이시로 도주했다가 그곳에서 가신들과 함께 어선에
몸을 싣고 쓰가루반도로 건너가 아오모리로 향했다. 아오모리에는 유신정부
로부터 임명을 받아 하코다테의 지사로 부임해 있다가 에노모토 군사에게
쫓겨난 시미스다니고고가 머물고 있었다. 그를 만나 후일의 홋카이도 수복을
논의하기 위해서 그곳으로 간 것이었다.

완전히 마쓰마에번까지 정복한 에노모토의 군사가 하코다테로 개선한 것은
11월25일이었다. 그러니까 와시노기에 상륙한지 한달 남짓만의 일이었다.

다음달 하순경에 마침내 에노모토는 공화국 수립을 위한 정권 구성에
착수했다. 사관이상의 군사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여 집권자를 선출하는
선거를 실시했는데 난생 처음 자기 손으로 권력자를 뽑는 투표행사에 참가한
사무라이들은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모두 밝은 표정들이었다. 물론
에노모토 자신도 투표를 했다.

일본의 역사상 최초로 제한된 투표에 의한 것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선거에
의하여 내각이 구성되었는데 그 최고 권력자 자리는 말할 것도 없이
에노모토가 차지했다. 미국을 본떠서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택하려다가
일본사람들의 정서에 맞는 "총재"라는 용어를 쓰기로 했다.

부총재에는 구막부의 중신이었던 마쓰다이라타로가 뽑혔는데 선거에서
그와 에노모토가 끝까지 겨룬 셈이었다. 마쓰다이라를 지지하는 사무라이들
은 에노모토가 너무 서양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대하여 불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대세는 함대를 이끌고 이곳까지 와서 오늘을 있게 한
에노모토 쪽이었던 것이다.

해군봉행(해군대신)에는 아라이이구노스케가, 육군봉행(육군대신)에는
오오도리게이스케가 당선되었다. 별동대를 이끌고 혁혁한 전과를 세운
히지가타도시소는 육군 봉행병(부대신)겸 하코다테 시중취체(치안대장),
육해군 재판역두취(군사재판장)에 선출되었다. 알맹이가 있는 실권을 차지한
셈이었다.

그리고 개척봉행(개척대신)이라는 직을 두었는데, 사와타로사에몬이 그것을
맡게 되었다. 황무지가 많은 홋카이도였기 때문에 특별히 개척책임자를
두었던 것이다.

선거에 의한 내각이 구성되자, 다음은 나라이름을 뭐로 할 것인지 내각
회의에서 논의한 끝에 그것 역시 다수결로 결정했는데, "에소"가 채택
되었다. "에소공화국"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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