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경영과 환경기술을 무기로 한 유럽기업들의 공세가 시작됐다.

특히 작년말에 타결을 본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에 이어 차기 다자간무역
협상으로 환경기준과 무역을 연계시키려는 소위 그린라운드(GR)를 유럽이
앞장서서 주장하고 있는 것도 유럽기업들이 갖고 있는 이 분야의 경쟁력을
자신하기 때문이다. 사실 유럽기업들은 일찍부터 환경문제에 눈을 뜬
소비자들 덕택에 환경을 생각지 않고서는 장사를 할수 없게 된 여건에서
자라 왔다.

유럽연합(EU)집행위의 니콜라스 밴필드 과학기술국환경담당과장은
"소비자들의 점증하는 환경보호요구가 정부의 규제를 유도하고 이에따라
기업들로 하여금 강화되는 환경기준에 생산공정과 제품규격을 맞추도록
이끌고 있다"면서 유럽기업들의 환경경쟁력은 소비자들로부터 시작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환경규정은 기업간에도 차별화의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브리티시텔레콤의 경우 납품업자를 선정할 때 환경경영상태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제지업자들에 대해 염소를 사용하지 않은 용지의
납품을 요구한다. 이같은 납품업자의 선별을 위해 BT는 환경보고서를 요구
하고 있다.

실제로 환경적인 요소가 판매나 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경험은 유럽기업
관계자들로부터 자주 듣는 얘기다.

독일지멘스사가 지난해 소재재활용및 절전형으로 개발한 환경PC는 다른
제품보다 가격이 10~20%나 비싼데도 시판되자마자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가격보다 환경을 우선시하는 독일사람들의 높은 소비자의식 때문"이라고
지멘스의 하르무트 룽게 연구개발담당이사는 설명한다. 다소 비싸더라도
소비자들이 기꺼이 환경보호제품을 사려는 의사표시가 뚜렷하다는 얘기다.
때문에 기업들은 자신을 갖고 환경관련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한마디로 유럽소비자들의 의식이 "자나깨나 환경보호"라는 식이니 기업들
이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유럽기업들
의 경쟁력은 분명히 앞서고 있다.

"다른 경쟁국들보다 환경규제가 앞서 시행됨으로써 유럽기업들은 점진적
으로 적응해 왔다"고 설명하는 밴필드과장은 "소득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소비자들의 환경보호의식이 높아질 것이고 그러면 환경기술이나 환경경영
에서 이미 경험을 쌓은 유럽기업들이 유리하다"는 논리를 편다.

우선 유럽기업들은 소비자들의 환경보호의식을 해석하는 것이 다르다.
우리나라업체들이 전력소비를 좀 줄이고 재활용가능한 포장재를 썼다고해서
그린컴퓨터니, 그린TV니 하며 "그린"을 남발하는 것과는 달리 제품의 내용물
하나하나를 뜯어내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멘스의 환경PC외에도 독일자동차의 대명사인 메르세데스 벤츠의 환경
제품개발전략이 대표적인 예. 벤츠는 "환경성.경제성.기술성등 3가지의
완벽한 조화"를 모토로 새로 생산하는 자동차의 재활용도를 점진적으로
높이고 있다. 새차에는 부품마다 색깔표시를 해 녹색은 재활용가능, 빨간색
은 화학적으로 분해가능, 파란색은 소각해 폐열활용가능한 부품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벤츠의 카니우트 환경기술담당박사는 "비교적 환경의식이 모자랐던 90년
이전에 생산한 차종에 대해서도 차를 어떻게 쪼갤 것인지를 알려주는
분해교범을 최근에 만들어 폐차업자들에게 나눠줬다"고 말했다. 이 교범에
따라 분홍 노랑 보라등 8가지 색깔별로 부품을 모아 반품하면 벤츠가
용도에 따라 처리한다는 것이다. 벤츠는 자동차부품의 수거및 재활용을
위해 영국 스웨덴 미국 일본등 9개국에 폐차처리대행업체를 지정하고 기술
과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자동차의 애프터서비스는 폐차까지"인 셈이다.

유럽기업들의 이같은 재활용도제고노력은 생산자에게 제품의 회수및
재활용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정부의 규제강화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규제는 95년이후 본격적으로 실시될 예정인데 유럽시장에 접근하는 역외
국가기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다시말해 유럽시장에 갓 진출한 우리나라의 자동차업체들은 폐기처분되는
자사차들을 회수해 분해처리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다. 공장을
곁에 두고 벌써부터 대비하고 있는 유럽업체들에 비해 그만큼 비용부담이
커지는 셈이다.

유럽은 다양한 환경규제를 만들어 시행하거나 계획함으로써 역외기업들에
계속적으로 새로운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최근 기업의 환경보고서작성및 공개를 의무화한 규정을
만들었다. 이 조치도 다른 유럽국가들로 확대될 전망인데 유럽기업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노르웨이의 노르스크 히드로그룹이 89년 처음 작성한뒤 환경보고서(그린
리포트)를 작성하는 유럽기업은 1백여개를 넘고 있다. 영국의 환경컨설팅
회사인 서스테인어빌리티의 존 엘킹턴 부장은 "환경보고서를 작성, 공개
하는 것은 기업이미지를 높이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곧 환경
보고서는 유럽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들의 필수적인 업무의 하나가 될 것"
이라고 내다봤다.

환경보고서와 함께 직원들을 대상으로 환경규범을 제정하는 기업들도
확산되고 있다. 직원들에게 환경규범의 실행을 통해 소비자들의 환경보호
요구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시킨다는 것이다.

지멘스는 16쪽짜리로 된 환경규범을 만들어 직원들에게 환경의식을 무장
시킨 결과 태워도 유독가스가 생기지 않는 PVC판을 개발해 내는 부수적인
성과도 얻었다.

이같은 환경기준이 역외기업에 무역장벽으로 이용될 가능성에 대해 밴필드
EU집행위과장은 환경마크제를 예로 들면서 "정부규제에 앞서서 소비자들에
의해 선별될 것"이라고 전제, "그런 점에서 유럽기업들은 확실히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시말하면 환경요소가 또 다른 경쟁무기
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