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선진국 대도시들의 쾌적한 주거환경을 볼때마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저럴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본적이 있다. 집집마다 완비된 주차시설, 여유
있는 도로와 녹지공간, 질서있는 공간배치등 쾌적한 서구의 주거환경.
그러나 우리나라 도시들이 무질서하게 개발되어 슬럼화하고 있는것을 볼때
우리가 그들의 소득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시간문제이겠지만 생활의 질로
따라잡기는 매우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요즘 서울의 뒷골목을 가보면 슬럼화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로 진행
되고 있는가를 실감한다. 마을마다 골목마다 그대로 주차장이다. 차들이
비켜가기는 커녕 일방통행조차 어렵다. 소음과 먼지와 인파와 차량으로
뒤범벅이 된 서울은 온통 짜증나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새로 짓는 집들은 백년을 보고 짓기는 커녕 날림집이고 주거환경을 개선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좁은
자투리땅에 고층으로 올라가는 다세대니 다가구니 하는 집들은 계속 자동차
를 길거리에 토해내고 있다. 차고를 두도록 되어있지만 그것은 형식일
뿐이다.

예컨대 폭3m의 공지는 주차장으로 허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대이상
주차가 불가능하며 주차장으로 승인받은 지하실은 준공검사후 방으로 개조
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그리고 현재의 건폐율(60%)과 용적률(4백%), 이웃과 떼어야 하는 거리등
건축에 관한 기준은 쾌적한 주거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거기에 분양가
규제까지 있으니 백년앞을 보고 집을 지으려해도 그럴수 없게 되어있다.
그래서 신축주택들이 오히려 서울의 슬럼화를 촉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서울이 슬럼화하고 있는데는 정부와 국민에게 다같이 책임이 있다.

정부의 도시정책은 지금까지 절대빈곤 시대의 틀에 얽매여 있다. 즉 주택
공급이 절대부족하기 때문에 주택의 질과 주위환경보다는 많은 양을 값싸게
공급하는데 급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건축허가기준에 주차장문제와 일조권등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있다.

또 이러한 규제를 강화하면 주택건설단가가 상승해서 주택공급에 역작용이
있다는 것이 그동안 행정당국의 사고방식이었다.

그리고 값싸게 공급하려는 취지에서 분양가를 규제해오고 있다. 실제로
수많은 건축업자들이 질이 좋은 주택을 지어 팔고 싶어도 이것때문에
날림공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분양가규제는 서울의 슬럼화를 촉진하는
정부규제가 되어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후진적인 의식구조도 서울슬럼화에 큰 몫을하고 있다. 예컨대
차는 가지지만 차고는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안방이나 부엌이
필요한 것처럼 차를 가진 사람에게는 차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인 시민의식이다. 그런데 차는 도로에 세워두어도 된다는 것은 물질
수준은 마이카시대에 와 있지만 시민정신은 아직 여기에 이르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절대빈곤단계를 지나지 않았는가. 선진국을 지향하며
국제화를 서두르고 있지 않은가. 이제 생활환경이 가장 큰 가치로 부각되는
단계에 이르렀으며 사람들은 양보다 질을 더 중시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를 분양받아 거금을 들여 내장재를 뜯어내 개수하고 있는
현상은 그러한 변화의 한 단면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제 정부정책과 국민
의식 모두가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고 이러한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이런점에서 금후의 도시정책과 주택정책은 양보다 질,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의 개혁이 필요하다. 이제 그러한 개혁의지로 서울의 슬럼화를
차단하고 쾌적한 질중심의 새서울을 건설하는 일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새집을 짓는데 차고 건폐율 용적률등의 기준을 전면 재검토해야 옳다.

그리고 분양가규제는 철폐해 주택공급을 시장기능에 맡겨야 한다. 새로
건설되는 주택의 질이 개방경쟁을 통해서 보장되도록 해야한다. 재개발
또는 재건축할때는 적어도 주거환경과 주차사정을 개선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단적인 계획개발이 용이하도록 사유지에도 공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으며 환경요건을 강화해야 할것이다.

이와더불어 노상주차에 대해서는 단계적으로 도로점용료를 부과해 차를
가진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위해 주차장을 마련하도록 유도해야 할것이다.

도시는 한번 슬럼화하면 영원히 재생의 기회를 얻기 어려운 것이며 특히
우리나라처럼 택지가 조각조각으로 사유화되어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
하다. 더 늦기전에 서울의 주거환경을 살리기 위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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