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달러와 일엔화의 등가시대가 눈앞에 다가와있다.

"1센트=1엔", 지난 80년대말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힘들었던 이등식이
엄연한 현실로 나타날 역사적인 날이 머지 않았다.

올들어 지난 2월중순부터 본격화된 엔고로 달러에 대한 엔화환율은
1백3엔-1백5엔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동안 여러차례 엔값은 국제외환시장에서 장중중한때 달러당 1백엔
직전까지 치솟아 달러와 엔의 등가시대가 임박했음을 예고해 주곤했다.

엔화는 현대세계경제의 시발점인 2차대전직후의 달러당 3백60엔에서
지금은 달러당 약1백4엔으로 그 가치가 4배가까이로 올라 있다. 지난
50년동안 줄곧 오르기만 해온 엔화의 괴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기본적으로 어느나라의 통화가치가 올라간다는 것은 그나라의 경제력이
커지고 있어서이다. 바로 일본경제력의 증대로 엔화가치는 오르고 있는
것이다. 경제력증대는 국내총생산(GDP)과 무역흑자의 확대를 말한다.

전후 패전국 일본의 경제는 그야말로 폐허상태였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자 세계최대무역흑자국이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대략 3조3천억달러. 미국의 5조3천억달러와는
격차가 크나 세계총GDP(약25조달러)의 13%가 넘는 엄청난 경제력이다.

지난해 무역흑자는 1천1백억달러가 넘어 세계최대흑자국의 자리를 수년째
지켰다. 80년대초이후 무역흑자기틀이 정착되면서 지금까지 일본의 누적
흑자액은 거의 8천억달러에 이른다.

이처럼 거대한 경제규모와 무역흑자가 엔고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여기에다 미국이 대일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엔가치를 끌어
올리는 환율정책을 쓰고 있어 엔고는 더욱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결국 경제력증대라는 자연적이고 점진적인 엔고요인에 미국의 인위적인
엔고유도정책이 더해져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엔고특징은 자연적인 요인보다는 미국의 엔고압력에 의해 촉발되고
있는 점이다. 현재 일본이 무역흑자를 많이 내고는 있으나 경기침체를 겪고
있어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때는 엔고가 가파르게 진행될 이유가 없다.

자유무역의 기수로 자처하는 미국이 무역적자감축을 위해 엔고정책을
쓰는것은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적어도 자유무역정신을 신봉하는
미국이라면 환율이 경기상태 인플레 금리 무역수지등 순수한 경제적요인에
의해 움직이도록 내버려 둬야만 할것이다.

달러당 1백엔언저리까지 육박해 있는 최근의 엔고는 국제금융구조와 세계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것이다. 더구나 90년대들어 경제의
국경이 사라지는 글로벌화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어 엔고의 파장은 어느때
보다 클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엔화의 국제기축통화로서의 위치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이유는 일본기업들이 엔고에 따른 환차손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가능하면 엔화베이스로 수출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결과
엔화는 교역결제통화로서의 비중이 커지게 되고 그에 따라 더욱 확고하게
국제기축통화로서 자리잡게 되는것이다.

각국정부나 기업들은 엔화가 국제기축통화로서의 기능이 커짐에 따라
해외자금을 조달할때 엔화기채를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국제기채
시장에서 엔화의 비중을 커지게 한다.

동서냉전종식과 함께 세계정치경제구도가 미국중심의 일극체제에서 독일
일본등의 입김이 커지는 다극체제로 바뀌면서 미달러는 지금 기축통화로서의
세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이와중에 엔화가 기축통화로서의 위치를 키우고
있는 것은 엔고가 내포하고 있는 중요한 의미이다.

독일마르크화도 엔화와 함께 기축통화로서의 위치를 굳혀 나가고는 있으나
통독에 따른 경제후유증때문에 엔화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의 엔고를 단지 미일간의 무역불균형해소차원에서 단순하게
보기보다는 국제기축통화로서 달러화를 추격하는 엔화, 일본경제의 위력
확대라는 면에서 그의미를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엔고가 각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또한 크다. 당사국인 일본과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두나라와 교역을 하는 모든국가에 경제적으로 큰 파급효과를
낸다.

경제나 무역구조에 따라 각국은 엔고로 이득을 볼수도 있고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 엔고는 질에서 별차이가 없이 일본상품과 경쟁관계에 있는
선진국들에는 유리한 면이 많다.

그러나 생산기계나 부품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동남아국가들은 엔고로
수입단가가 올라 대일무역역조가 심화되는 피해를 입는다. 물론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는 일부수출품에 대해서는 엔고를 계기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을 늘릴수 있는 잇점도 있다.

이처럼 엔고는 여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탓에 각국으로부터 주목을 끌고
있다. 그렇다면 엔고현상은 언제까지 지속되며 달러.엔의 등가시대는 과연
도래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변수가 많아 속단하기가 힘들다.

지난 92년부터 불황에 빠져있는 일본경제의 회복시기및 회복정도, 일본
시장개방을 둘러싼 미일간의 통상마찰이 어떤식으로 결말이 나느냐에 따라
엔고의 장래는 달라진다.

특히 엔고의 빌미가 되고있는 미일통상마찰은 앞으로 엔화가치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미국의 시장개방요구를 받아들여 양국
경제관계가 원활해지면 엔고현상은 일거에 사라질수 있다. 그러나 일본이
시장개방확대를 끝내 거부하고 미국이 무역보복에 나설경우 엔고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엔화환율은 마의 1백엔선밑으로 내려가
달러.엔의 등가가 아니라 엔가치가 달러가치보다 높아지는 엔과 달러가치의
역전현상이 전개될수 있다.

(이정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