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교학도가 된 이래 줄곧 우리 불교는 새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벌써 34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60년대에 그래도 잠깐 희망이
비치던 불교개혁의 기운은 큰 스님들의 별세와 더불어 나날이 쇠퇴해 갔다.
더이상 승려들이 이끄는 종단에는 기대를 걸수가 없어 독자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힘자라는대로 밀고와 지금에 이르렀다.

나는 위정자들이 그래도 올바른 혜안을 가졌다면 민족문화의 찬란한 유산을
낳은 우리 불교의 전통을 단순한 역사적 유물이나 남의 종교로 관용하는 것
이 아니라,21세기의 사상적 문화적 혼란을 극복하는 정신적 양식으로 활용
하는 지혜도 있을 법하다고 기대해 보았다. 나는 서구의 지성들이 자기네
문화의 한계를 알고 노장사상과 불교에 깊은 관심을 표하는 것을 보아왔다.
때문에 우리가 이 낡은 전통을 잘 계승 발전시켜 서양문화와의 조화만 꾀한
다면 우리 민족이 앞으로 세계무대에서 문화적 창조자로서의 선구적 역할도
할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일은 꼬여가기만해 여가기만 해
그동안에 사람들은 악인악연으로 좋지않은 업보만 더 많이 쌓았다.

나는 조계사 사태를 이런 시각에서 본다. 대통령중심제의 대권후보들은
불교계의 표를 의식하고 불교계 장악을 위해 강력한 독재적권력을 쥔 일인의
총무원장을 만들고 이를 장악하는 수법을 썼다. 그 과정에 숱한 비리 부정
이 정.교간에서 저질러졌다. 독재자가 쓰는 수법은 정계에서나 교계에서나
다를 수가 없다. 이치나 정의란 단순한 일시적 위장물일뿐 알맹이는 무자비
한 철권 폭력적 제압뿐이다.

나라의 통치자가,국민들 다수가 믿는 진리를 존중하지 않고 애정을 표시
하지 않는데 국민이 어떻게 그 통치자를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겠는가.
특별한 은고를 입은 자가 아닌 다음에야 아주 바보거나 지극히 자비스런
도인만이 그를 불쌍하게 여길 것이다.

남과 북이 갈라져 평화통일 운운하는 마당에 나는 가끔 찬 물을 끼얹는
발언을 한다. 남쪽자체에서의 가지가지 다양한 분열과 대립은 어떻게 할
작정이냐고. 불교를 흡수통일하겠다고 벼르는 기독교 광신자도 있다.

지금 한국의 불교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인재난이다. 현대사회의
각분야에서 능숙하게 일을 처리해 갈만한 다양하고 참신한 현대적 감각과
고전적 전통적 소양을 겸비한 창조적 일꾼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계획적인 투자도 하지 못했다.

절과 불상과 탑은 많이 짓고 세웠다. 그것을 위해서는 재벌이 기복을 위해
돈을 내놓지만 사람기르는 일에는 투자할 생각을 안한다. 그래서 절은 부자
이지만 동국대학교는 가난한것이며 불교대학이라는 것도 동국대 하나뿐이다.
국립대학인 서울대 종교학과에서는 학과 창설이래 불교학 전담 전임교수를
받지 않았다.

승려들의 교육은 사찰안의 강원과 선원에서 따로따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현대불교학의 제반 연구성과가 잘 반영되지 못한 결함때문에 젊은 학인의
불만이 없지 않다. 그렇다고 승가대학이나 동국대승가학과가 반드시 훈고
학문헌학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지도 못하다.

나는 오늘을 사는 젊은 승려학인의 고민이 이만저만하지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지식도 모자라는데 지혜가 돼있느냐고 묻는다. 자비는
어떠냐고 또 묻는다. 이 모든 것이 얻어져야 도인이 된다. 스님으로서
진짜로 대접받을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는 말이다. 이것을 마련해주지
못한것이 조계종당국자의 가장 큰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