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6일 오후 부평 현대아파트앞에 있는 조그만 지하카페에서 7명
의 남자들이 모였다. 심각한 표정의 참석자들은 만나자마자 곧장 구수
회의에 들어갔다.

이날 모인 정창운, 김영규, 이실경씨 등 7명은 의자생산분야에서는 국내
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들. 이날 모임을 가지게 된 발단은 의자업계의
간판급 경영인인 이강종씨(51)가 대주주의 간섭에 못견뎌 사표를 던진데
따른 대책을 마련키 위한 것.

이날 모임에서 내린 결론은 이강종씨를 사장으로 모시고 모두 힘을 합쳐
스스로 우리나라 최고의 의자전문생산업체를 만들어보자는 거였다.

그러나 월급쟁이인 이들에겐 돈이 없었다. 이강종씨도 전문경영인으로
일해와 가진 돈이 많지 않았다. 이들은 그동안 함께 일해온 동료들을 설득,
힘닫는 데 까지 돈을 긁어모아 보기로 다짐한다.

의자공장에서 잡일을 맡아온 아줌마인 김선자씨가 2백만원을 냈다. 그러자
모두들 몇백만원에서 몇천만원까지 한푼한푼 아껴모은 돈을 서슴없이 투자
했다.

적금통장을 해지한 사람이있는가 하면 전세집을 월세로 바꿔 투자하기도
했다. 놀랄 정도로 돈이 빨리 모였다. 이들은 12일뒤인 2월6일까지 총4억
7천만원이란 엄청난 돈을 모은다.

투자한 인원은 모두 46명. 한결같이 함께 의자회사에서 일하던 사람들
이다. 이들은 이튿날인 7일 동성사무기기주식회사란 사무용의자전문업체를
탄생시킨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종업원이 1백%를 투자, 중기업규모 제조업체를 탄생
시킨 것이다. 사장은 이강종씨가 맡았다.

그러나 놀라움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강종사장이 회사경영을 맡아
인천 석남동에 5백30평공장을 임대, 시설을 일부 설치하고 첫 제품을 생산
하는 데 2주일 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않는 일이다. 더 기상천외한 것은 생산을 시작한
지 하루만인 22일 오후 사무용의자 1트럭분을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 납품
하기에 이른다.

첫 생산을 시작한 지 1달뒤인 3월12일에는 회전의자 1컨테이너분 7천5백
30달러어치를 홍콩의 핸더슨사에 수출키 위해 인천항에서 선적한다. 이어
26일에 다시 1컨테이너분을 홍콩으로 내보낸다.

어떻게 이렇게 빠른 속도로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은 이강종
사장의 개인이력과 국내 의자산업의 실태를 알고나면 조금은 풀린다.

이사장은 71년12월 국방부에 기술사무관으로 들어가 양산 국방부조병창
에서 81년 공장장이 될때까지 M16을 비롯 K1 K2 등 각종 소총을 생산하는
현장을맡았다. 총30년간을 생산현장에서만 일했다.

그가 의자업계에 처음 몸을 담은것은 지난 89년초 의자업체인 S사의
대표이사를 맡으면서부터.

생산현장관리에 능통한 그는 의자산업의 매력에 흠뻑 젖어들었다. 의자
에 들어 가는 부품 및 소재는 총1백가지. 소재는 철판 스폰지 섬유 스프링
인조가죽 알루미늄 목재 등으로 다양하다.

기술은 프레스 벤딩 금형 롤러가공 분체도장 강화플라스틱가공 등으로
더욱 복잡하다. 여기에다 예술분야인 디자인과 색상이 전제돼야 한다.

더욱이 허리에 피로감을 주지않키 위해서는 의학적인 설계도 감안돼야
한다. 사무자동화(OA)와 공장자동화(FA)도 의자가 결정돼야 동작연구등이
이뤄진다.

이사장은 "따라서 의자야말로 종합예술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까지 우리나라의 경우 독창적인 의자가 거의 없었다. 미국 유럽의 디자인
을 그대로 배끼기만 했다는 것.

실제 한국인의 체형에는 척추곡선이 18~23 사이에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
의 의자가 21~26 사이에 있단다. 이같은 헛점을 틈타 이미 대만의자와
일본의 오카무라및 이토키의자가 대한 공세를 개시했다고.

이사장은 이들의 집중공세를 정면으로 맞서기위해서는 한시가 급하다는
걸 깨달았다. 따라서 속전속결을 택했다. 속전을 위해 M16개발때 활용했던
시간단축관리기법인 PERT전략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사장은 이런 속전이 가능했던건 투자자이자 사원인 종업원들의
"신바람"때문이었다고 공로를 이들에게 모두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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