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중인 용봉봉래산향로는 백제전성기를 상징하듯
찬란하게 빛나고 있지만 진흙속에 옆으로 처박혀있는 향로의 발굴현장사진
은 당시의 공방에서 세공과 주조에 몰두했던 장인들의 모습을 선연케
하면서도 어쩐지 우리 조상들의 뛰어난 솜씨가 긴잠에 빠져있는 듯한 감회
를 불러 일으킨적이 있다. 저런 기량과 기품들이 어찌하여 계승 발전되지
못하고 오늘 국제경쟁시대에 와서 우리에게 장탄식을 안겨주고 있는가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우리 조상의 작품들을
저렇게도 아름답게 감상하는 방법이 있었구나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을 감동
시켰지만 그중에서도 봉덕사종(에밀레종)을 설명하는 대목은 가히 압권을
이루고 있다. 진리의 원음이라는 종소리도 그렇지만 1,200년전의 기포없는
주조술과 깨끗한 용접술에 대하여는 요즘의 전문가들조차 혀를 두를 정도
라고 한다. 특히 30t 가까운 중무게를 지탱하면서 지름 10cm도 안되는 구멍
을 통하여 종을 매달고 있는 고리쇠는 현대공학을 동원해도 만들수 없다고
하니 이렇게 신비스러울수가 있나 싶다.

그러나 우리 문화유적의 조형기술과 자연지물을 높은 정신세계(신앙)로
연결시킨 아름다운 설계들이 어쩌다가 대가 끊기고 말았는가 하는데 생각이
이르면 오직 깊은 회한이 서릴 뿐이다. 누가 어떤 수업을 거쳐 그토록
위대한 경지에 이르렀으며 작품이 시작되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수
의 피땀어린 노력이 있었는가 등이 밝혀지지 않아 더욱 아쉽게 여겨진다.

제작연대와 제작진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경우에도 관할 벼슬아치나 작업을
지휘한 고승의 이름이 주조되어 있을뿐 실제 예술행위의 주체는 어떻게
길러져서 어떠한 대우를 받고 어떻게 사라졌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런면에서 답사기는 우리에게 탄성을 연방 자아내게 하면서도
오늘 절박하게 요청되고 있는 기술개발이나 신실한 제품손질에 대해서는
아무런 용기와 의욕을 던져주지 못하고 있다 하겠다. 더욱이 1,000여년전에
살던 슬기로운 조상들의 직계후손이 그대로 이땅에 살고 있는데도 왜
그분들의 재주를 잃어버렸는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경제학박사 민병균은 장인들에 대한 수탈이 심해지면서 그 대가 끊겼다고
개탄한 일이 있다. 기술전승은 커녕 고통을 함께 떠넘기는 꼴이라하여
자기 손목을 자르는 일까지 있었다하니 믿기 어려운 얘기다.

일본이 나라를 강점한뒤 우리 문화유산과 함께 모든 광맥을 이잡듯이 뒤진
일은 너무나 유명하지만 그들이 좋아하는 온천의 개발에 대해서도 두터운
보고서를 남기고 있다. 이중 지명이나 전설로 보아 온천이 있을만한 곳에
온천이 발견되지 않고있는 것은 주민들이 그 온천을 묻어버렸기 때문이라는
해설을 덧붙이고 있다. 피부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꾀는 것도 걱정이 되지만 무엇보다 요양을 핑계삼아 줄줄이 찾아드는
관리들의 뒷바라지가 겁이 났다는 것이다.

초기 과학기술이 우세했던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뛰어난 솜씨들이 궁중
귀족들의 장신구와 기호품을 만드는데 동원되고 있는동안 일본에서는 성곽
과 같은 방어시설의 축조와 무기개발에 열을 올렸기 때문에 일본 특유의
산업혁명을 일으킬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서양에서는 부패한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분노가 포도처럼 개혁세력을 끌어 모았고 이들이
자기성실의 방편으로 과학을 발전시켜 산업혁명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연구도 나와 있다.

우리조상들이 혼자만 잘 살기위해 고려청자기술을 숨겨오다 잃어버렸다는
식의 식민사관은 벌써 버렸어야 하지만 백성들은 창작의욕을 가로막은
권력층의 횡포도 면밀히 따지고 밝혀야 한다. 기술개발에도 에토스가 필요
하다. 삶의 자리에 대한 강한 애정이 있어야 하며 마음껏 활동할수 있는
자유와 꿈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육체노동의 강도를 높이려는 모작질만 가지고 두뇌플레이가 요구
되는 현대기술에 접근할수 없으며 그렇다고 구소련이나 북한에서처럼 무기
를 개발하는 특정 기술인에게 온갖 특권과 특전을 부여한다해도 곧 그 한계
가 드러나고 만다. 흔히 인센티브, 인센티브하지만 그것이 효과를 나타내는
분야는 그리 많지 않으며 창의력과 탁월성에 바탕을 둘때 인센티브없이
돌아가는 분야도 얼마든지 있다. 요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오늘날 판명되고 있듯이 어차피 우리기술은 우리가 주체가 되어 개발할수
밖에 없다. 그러할때 우리조상의 슬기를 배우는 일은 중요하다. 조상의
슬기가 면연치 못하고 짓밟힌 사실도 드러내야 한다. 지금 사회적으로
명예의 중심은 어디에 실려있는가도 따져야하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관료주의의 폐단도 적나라하게 가려내야 한다.

국민 모두가 기술개발에 도움을 못주고는 어디서 삶의 진가를 찾을수
있는가 되돌아봐야 하며 경쟁력향상에 열을 올린 인사들의 면면들이
장관들보다 크게 매스컴을 장식할수 있도록 의식구조를 전진시켜야 할
것이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