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주 남부의 오스틴공항에서 동쪽도로를 타고 자동차로 20분쯤 달리면
텍사스대학 캠퍼스가 나타난다. 이 캠퍼스의 한켠에 조그맣게 서있는 3층
건물이 "주식회사 미국"의 상징으로 주목을 모으고 있는 미반도체기술
연구소다. "세마테크"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이 연구소는 미국
반도체업계가 공동출자해 설립한 일종의 기술개발조합.

정보슈퍼하이웨이등 미국산업의 경쟁력강화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앨 고어부통령이 "미국기술연구소의 모델이자 경쟁력의 상징"이라고 극찬
했을만큼 기업간 수평기술협력의 한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연구소가 요즘 "타도 일본"을 외치며 64메가D램등
차세대반도체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있다. 뿐만아니라 마이크로프로세서
등 비메모리분야의 기초및 응용기술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세마테크는 미국 반도체업계와 연방정부가 반도체분야의 세계정상탈환을
겨냥, 지난 87년 공동설립했다. 전자산업의 핵심기술인 IC(집적회로)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개발했으면서도 일본에 밀려 "반도체 챔피언"의 자리를
내줘야했던 미국업계가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내놓은 비장의 카드인
셈이다.

세마테크는 반도체 신공정의 개발등에서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경쟁력있는 전자제품을 만들기 위한 원천기술을 확실하게 다지자는 구상
에서다. 세마테크는 이를 위해 전국 33개대학및 15개전문 연구소를 연결
하는 기술개발체제를 갖추고 있다. 반도체장비 제조업체들과도 신공정개발
을 위한 협력시스템을 다지고 있다. 기초기술부터 단단하게 확보하자는
일종의 "올코트 프레싱"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세마테크는 이같은 기술총력체제에 힘입어 지난89년 0.8미크론 (1미크론은
1천분의1mm) 두께의 범용반도체칩 제조기술을 세계 처음으로 개발하는 개가
를 올린 것을 시작으로 최근 0.5미크론과 0.35미크론 두께의 반도체 제조
기술을 잇달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지난해 미국반도체업계가 7년만에
처음으로 일본업계를 제치고 세계반도체시장 점유율 수위자리를 되찾은데는
이같은 세마테크의 기초기술 수혈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 연구소가 가진 진정한 힘은 이런 가시적인 성과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세마테크는 미국 산업경쟁력을 회복시키기 위한 연방정부의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있다"(워싱턴 포스트지) "세마테크는 경쟁자들이
어떻게 공동의 이익을 창출할수 있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기술
연구소다"(인베스터즈 비즈니스 데일리지)는 미국언론들의 평가처럼 이
연구소는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무한기술경쟁시대에서 미국기업들이
"때로는 손을 맞잡는게 훨씬 더 현명한 일"이라는 지혜를 몸소 체득하고
있는 현장이다(윌리엄 스펜서소장).

세마테크는 연방정부와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12개업체들이 공동경영권
을 나눠갖고 있다. 인텔 텍사스인스트루먼츠등 반도체시장 패권을 놓고
자웅을 겨루고 있는 경쟁업체들이 세마테크의 이사회석상에서만은 머리를
맞대고 협의방안을 논의하는 "협력자"로 변신한다. 세마테크가 설립된 뒤
부터 지금까지 사용된 15억달러의 연구개발자금은 연방정부와 반도체업체들
이 절반씩 부담했다.

세마테크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MCC(Micro Electronics Computer &
Technology Cooperation)라는 또다른 공동기술연구소가 나타난다. 세마테크
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기업연합체"의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82년
설립된 이 연구소는 보잉 모토로라 휴렛팩커드등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
14개사가 지분을 나눠 출자하고 있는 주식회사형태의 연구소. 초정밀전자
분야와 정보통신분야의 기술을 개발, 다양한 업종에 걸쳐있는 회원사들에
공급해주는 기술메신저의 역할을 하고 있다.

MCC에 연구진을 파견, 연구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미국기업은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애플 AT&T등 48개사에 이르고 있다. 이들 연구진은 이사회
에서 결정하는 연구개발프로젝트를 전국 13개대학과 연결된 연구센터에서
개발한다. MCC에 회원으로 가입, 개발된 기술을 공급받는 기업과 단체는
1천개가 넘는다. 기술을 건네받는 대가로 MCC에 주는 돈은 연회비 2천5백
달러가 전부.

MCC관계자는 "기술개발작업에 참여하는 회사는 개발능력을 축적한다는
측면에서, 회원사들은 적은 투자로 신기술을 취득할 수있다는 점에서 상호
이익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업계공동의 기술개발출자는 요즘 미국내에서 흔히 볼 수있는 조류다.
미국의 대표적 국립연구기관인 NASA(항공우주국)는 최근 예산의 10%를
민간기업과의 공동연구개발비로 사용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NASA는 최근
보잉 맥도널더글라스등 미국항공회사들과 상업용 항공기제작기술을 개발
하기 위한 연구에 공동으로 착수했다.

자동차업계와는 신소재와 바이오테크놀러지 공동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정부는 이외에도 각 정부출연연구소들이 무공해차 상업용우주
항공기등 미래기술기기를 업계와 공동으로 개발토록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와 업계가 신기술개발을 위해 여기저기서 힘을 합치고 있는
것이다.

세마테크의 윌리엄 스펜서소장은 "미국기업인들은 그동안 누가 얼마만큼의
곡식을 수확하느냐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볍씨를 뿌리기전에
토지를 함께 개간하는 것이 훨씬 더많은 공동이익을 보장한다는 사실에
눈을 뜨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