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미리 파괴해 놓았어야지요. 적군이 몰려오는 걸 알고 그제야 파괴
하려고 드니 그게 잘 부서지겠어요? 보나 마나 제대로 화약도 터뜨려보지
못하고 물러났을 거요" "그곳은 비까지 온다는군요. 그러니까 더 화약이
제구실을 못했나 봅니다" 듣기 싫다는 듯이 마쓰다이라는 잔뜩 더 이맛살
을 찌푸렸다.

"서둘러 원군이나 보내도록 하오" "예" "어떠한 일이 있어도 도노구치하라
에서 적군의 진격을 막아야 되오. 알겠소?" "예,알겠습니다" "귀공이 직접
원군을 이끌고 나가보는 게 좋을 것 같구려" "그러지요" 사가와는 즉시
본진에 대기하고 있는 군사들에게 출동 명령을 내렸다. 백호사중 일번대는
번주의 경호를 위해 남겨놓고,이번대에도 명령이 하달되었다.

"야-" "드디어 싸우러 간다-" "신난다-" 삼십칠명의 소년병들은 환성을
터뜨리며 좋아했다.

그들이 후비 병력인 청룡대의 뒤를 따라 본진을 떠나서 다키사와 고개를
넘을 무렵에는 흐렸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눈아래 아득히 펼쳐진 도노구치하라 일대는 내리는 빗줄기에
자욱하게 흐려 보였다. 이제 비는 고개 위에도 부슬부슬 뿌리고 있었다.
사가와는 고개 위에서 군사들을 멈추게 한 다음 작전 지시를 내렸다.
그곳에서부터는 각 번대 단위로 갈라져 정해진 위치를 찾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적군이 진격해올 큰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 산기슭이나
언덕빼기에서 기다렸다가 협공을 하는 작전이었다.

소년병들은 대장인 히나다를 따라서 나무와 풀이 우거진 산비탈 오솔길을
이리 꾸불 저리 꾸불,더러는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면서 행군해
갔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땅거미가 깔리는 산길을
빗속에서 행군해 가는 일은 아무리 소년병들이지만 결코 즐거운 것이
못되었다. 이미 그들은 기분이 꽤 구겨져 있었다.

쓰루가성에서 출진할 때와 본진을 나설 때의 그 들뜬 흥분은 어느새
어디론지 가시고, "뭐 이래" "지랄같이 비는 왜 오지?" "전쟁이 신나는
건 줄 알았더니,그게 아니잖아. 아 지겨워" 곧 이런 소리가 입에서 튀어
나오려고들 했다. 그러나 그들은 묵묵히 바짝 긴장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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