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꽃샘추위에도 봄은 움튼다. 그러나 완연한 봄은 꽃망울이 그 움을
틔우면서 비롯된다. 산과 들,거리와 정원에 멀지 않아 피어날 온갖 꽃들이
화사한 자태를 드러낼 때가 다가오고 있다.

울밑의 민들레,들녘의 찔레,정원의 목련과 라일락,길가와 담장의 개나리,
산등성이의 진달래와 철쭉,거리와 산골짜기의 벚,뜰과 들의 복사와 살구.
그것들이 꽃망울을 터뜨려 삼원색의 갖가지 조화로 이 땅을 수놓게 될때
겨우내 움츠러졌던 어깨에 따사로운 기운이 감돌게 된다.

봄의 전령사인 꽃은 우리에게 활력만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고 갖가지
상념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꽃은 인간의 마음을 순화시켜 준다. 지루한 겨울의 삭막함을 벗어나
부드럽고 아름다운 심성을 되찾게 해 주는 것이 꽃이다.

"즐거운 봄이 찾아와/온갖 꽃들이 피어 날 때/그때 내 가슴속에는/사랑의
싹이 움트기 시작한다" 하이네의 시상처럼 사랑과 열정,평화와 온순,고결과
청순,위안과 희망의 마음이 되살려진다.

꽃이 주는 연상작용은 그처럼 좋은 면만을 지닌 것이 아니다. 일시에
피어나 요염한 모습을 한 순간 자랑하다가 어느날 밤사이에 갑자기 시들어
버리는 것이 꽃의 생태다. 그것을 보면서 불안과 비애,허탈과 허무를
느끼게 마련인 것이 인간의 상정이다. 우리는 꽃의 일생에서 인간의
덧없는 삶을 절감하게 된다.

"꽃놀이의 아름다움이여/하지만 사흘밖에 계속되지 않는다/장미꽃 시들기
전에/사랑하는 사람을 치장시켜라//서로 술을 나누며 생각하는 것/그
기쁨을 노래 불러라/꽃놀이의 아름다움이여/하지만 사흘밖에 계속되지
않는다"(F 뤼케르트 "사랑의 봄 편지")

생명이 짧은 꽃을 들라고 하면 아마 벚꽃이 머리에 떠오르기 십상이다.
헤일수 없이 많은 꽃봉오리들이 어우러져 화사함을 자랑하지만 만개의
절정기는 하루 이틀정도의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고 만다.

올해도 10여일뒤부터 제주도에서 벚꽃이 피기 시작해 북상하게 될 것
이라는 소식이다. 며칠동안 계속된 영하의 날씨속에 전해진 예보에 얼어
붙었던 마음이 훈훈해 지는 것만 같다. 벚꽃이 이 땅에 활짝 피는 날
그것을 완상하면서 벚꽃의 짧은 생명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관조해 보는
것도 헛된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