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클린턴 미대통령이 지금의 미.일경제마찰을 두고 "무역전쟁"(trade
war)라고 표현하여 화제가 되고있다. 무역전쟁이란 용어는 평론가들 사이
에서는 가끔 쓰여 왔으나 미대통령이 이 용어를 쓴것은 처음있는 일이어서
미.일경제마찰의 심각성을 새삼 엿보게 한다. 무엇을 말했는가 보다, 누가
말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은 이런경우를 두고 한말인것 같다.

미.일무역전쟁은 냉전이 끝난후 세계의 가장 큰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미.소간의 군사적 냉전시대에서 미.일간의 경제적 냉전시대로 된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무역전쟁의 핵폭탄이라고 할수있는 슈퍼301조 카드를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미.일무역전쟁에서 한시도 눈을 뗄수없다. 이것은 한국의 운명과
너무나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일무역전쟁을 보는 우리의 시각에 약간의 문제가 있는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다면적 구조적인 문제를 일면적 평면적으로 보는 경향이
없는가 하는 것이다.

우선 미.일무역전쟁의 국내정치적측면이다. 이번 미.일포괄경제협의가
시작되기전 일본의 호소카와총리는 비밀리에 미국의 요구에 "노"라고 하는
것과 "예스"라고 하는것 어느쪽이 국내에서의 지지율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를 조사하여 "노"쪽이 훨씬 도움이 된다는 조사결과를 얻었다는 후문
이다. 동시에 클린턴대통령은 "일본과의 통상교섭이 실패하면 할수록
미국민의 지지가 높아간다"는 국내정치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소련이라는 적이 사라진이후 일본이라는 새로운 "적"
이 클로스업되면 될수록 국민적 단합이 강화되면서 클린턴의 대일강압 자세
에 대한 지지가 높아가고 다가오는 중간선거에도 유리해진다는 이야기이다.
세계경제의 운명을 좌우할지도 모르는 미.일무역전쟁의 배후에는 이러한
미.일수뇌의 국내인기전술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그런데 이번 미.일간 포괄경제협의 결렬극에서 흥미를 끄는것은 누가
누구에게 "노"라고 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일본은 일본이 "노"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노"라고 말하는 일본인의 출현에 처음 얼마동안 일본의 "성숙"
을 자축하는 분위기가 일본국내에 넘쳤다. 그러나 그후 차츰 그게 아니구
나 하는 식으로 분위기가 바뀌면서 미국내의 심각한 반일분위기를 과소평가
해서는 안된다거나 사정도 모르고 경솔하게 "노"라고 말한 호소카와총리는
너무 미숙하다거나 하는 평가가 주조를 이루고 있는것 같다.

그런데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노"라고 한것은 오히려 클린턴이다. 클린턴
은 이미 호소카와와의 회담전부터 국가경제회의(NEC)를 소집해 "핵심이
빠진 합의는 필요없다"고 강력히 지시하고 호소카와의 타협적 접근에 단연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번 포괄교섭에 임한 양국의 대표들이 흘린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내용상으로는 상당한 타협의 여지와 기회가 있었던 것인데
끝내 결렬된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결렬의 정치적 시나리오가 작용한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여기에서 다시 흥미를 끄는것은 내용상으로는 미국이 "노"라고 했는데
형식상으로는 호소카와가 "노"한 것으로 되어 결국 일본이 그만큼 대미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큰소리한번 치고 슈퍼301조
라는 경제적 핵카드의 위험앞에 비싼 대가를 치러야할 판국이다. 지금
호소카와총리가 배수의 진을 치고 추진하는 "자주적"시장개방안도 그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더욱 흥미를 끄는 대목이 무대뒤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일본관료들의 연출이다. 미국의 통상관리와 대결한 것도 일본의 외무.
통산성의 관료들이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타협안에서 일보도 양보하지
못하도록 일본의 총리와 각료들에게 압력을 가하였다. 일괄 사표까지 제출
했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노"라고 말할수 있는 일본이라는 신화까지 마련
하여 일본내셔널리즘을 동원해 놓았다.

호소카와총리로서는 이 요구에 따르지 않을 경우 관료들의 총반란과
내셔널리즘의 반발에 직면하게 되어 있었다. 일본의 관료집단은 호소카와
총리를 포로로 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신연립정권이 들어선후 신정권과
관료와의 대결에서 관료집단은 극적인 한판승을 거둔 것이다. 그러므로
그뒤 미국의 화살은 일본의 관료에게 향하게 된다. 오히려 "개혁"정치를
표방한 호소카와정권을 보호해 주어야 할 판이고 초점을 일본관료공격으로
모으고 있다. 클린턴자신이 일본의 관료를 비판하고 나선것도 그때문이다.

물론 일본의 관료들이 만만하지 않다. 이미 일본관료들은 미의 대일"수치
목표"요구가 관리무역이라는 국제적 여론을 끌어 내는데 일정한 성과를
거둔 실적이 있다. 미국으로서는 시장개방을 아무리 요구해도 결국 구체적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니, 효과를 확실히 하기 위해 수치목표를 요구하게 된
것. 그런데 일본은 이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일본의 관료들과 관청
이코노미스트들은 수치목표 그 자체가 미국의 주장인양 선전하여 미국은
관리무역을, 일본은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듯한 양상을 만든 것이다. "미국=
관리무역" "일본=자유무역"이라는 등식극에 놀아난 국가나 경제학자가
적지 않은것 같지만 한국도 그중의 하나가 아닐까. 미의 수치목표 요구를
들어주어서는 안된다고 공공연히 일본관리들에게 충고한 것은 한국의
관료들이었다. 지금 일본 관료들은 미국의 대일관료비판에 대응하여 한편
으로 일본의 내셔널리즘을 동원하고 다른 한편 유럽연합쪽의 지원을 얻어
내려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 소비자의 이익을 강조하여 여론획득에
노력하는 한편 이번의 G7 재무장관회의에서 지지를 얻는데 성공하고 있다.
일본관리들의 다음카드는 무엇일까. 우리는 사태를 구조적으로 읽고 전략적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과잉반응을 보이는 것도, 강건너 불로 방관하는 것도 금물이다. 유연하고
치밀한 전략으로 미.일무역전쟁의 새우등구조를 어부지리구조로 바꾸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