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섭 <전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판결문의 문장이 길고 어렵다"는 말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산 정약용선생이 살아계시던 조선 후기 시대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목민심서에서 판결에 관한 글 일부를 뽑아 읽어보자.
"이 날에 백성들의 소장이 들어오면,그 판결하는 제사를 간결하게 할
것이다" "매양 한 가지 일을 처리할 때마다 선례만 좇아서 시행할 것이
아니요, 반드시 법도의 범위 안에서 편의 변통할 것을 생각하여 백성을
편안히 하고 이롭게 하기를 꾀하여야 할 것이다. 만약 그 법도가 국가의
기본법전이 아니며, 현저히 불합리한 것은 불가불 고쳐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옛날에, 법률이 중국에서 들어왔던 시대에는 그 문자가 온통
한자로 쓰여 있었고, 일본식민지 새대에는 일본글로 쓰여진 일본법률이
그대로 이 땅에 시행되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우리나라가 독립된
뒤에도 법률의 기본 틀은 일본법률이었다. 그래서 판결문의 문체나 문투가
일본식으로 따라간 것은 피할수 없는 현실이었다.

우리나라가 독립된지 50년,반세기가 흘러갔다. 이제는 우리글로 쓴
판결문이 나올 때가 되었다. 다만,한글이라는 문자로 썼다고 하여 그것이
곧 우리글로 쓴 판결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한자말이나 일본말 따위를
그대로 옮겨서 한글로 썼다고 하여 우리글이 되겠는가.

이일규 전대법원장은 어느 법원 사무감사에 오셔서 형사판결문에
"피고인이 사시미칼로 <><><>을 찔러 다치게 하여."라고 쓴 것이 있다고
지적하신 적이 있었다. 이처럼 어떤 말이 한글글자로 표현되었다고 하여
우리말이 되겠는가. 낱말을 골라서 써야 하고, 일본식 한자말 따위는
우리말로 일단 고쳐서 우리글로 써야 한다.

한 판결문의 일부를 여기에 인용해 본다. "피고들은 1987년5월말경
원고와 사이에, 그 시경 소외 최문철이 원고로부터 금1,200만원을,
변제기를 1988년 9월10일로 정하여 차용함에 있어서 피고들이 소외
최문철과 연대하여 원고에게 위 차용금을 변제하기로 하는 내용의 보증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문장은 읽기가 힘들고, 어딘지 좀 껄끄럽다. 이것을 아래와 같이
고쳐 써보면 다르다. "원고가 1987년 5월말경, 최문철에게 돈1,200만원을
빌려주면서, 갚을 날을 1988년 9월10일로 정하였고, 피고들은 최문철을
위한 여대보증인들이 되었다" 앞의 문장보다는 간단하다. 판사가 판결문을
쓸때 이렇게 간단히 써서는 안된는가. 법률에 어떤 제한 규정은 없다.
다만 판결의 결론이 정당함을 알수 있도록 당사자의 주장과 항변을 하나
하나 판단하라고 되어있다.

첫째, 목민심서에서 본 대로 선례{의 존중이다. 사람들은 선례를 따라서
하면, 마음이 편하다. 남이 하지 않는 일을 뭐 잘났다고 나혼자 그렇게
하겠는가.

둘째, 판사가 상급심의 재심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 우리글로 쓴 이상한
(?)판결문이 상소되어 올라가면, 상급심 판사님들이 이를 어떻게 볼까를
걱정한다.

셋째, 판결의 목적이 어디 있는지를 인식하지 못한 결과가 아닐가.
판결은 당사자를 위한 것이지 판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예컨데 우리들이 흔히 쓰고 있는 "법률을 잠탈한다든지, 기간을 도과
하여 등기를 경료하고"는, 일본말들이라서 "법률을 회피한다든지,
기간을 경과하여 등기를 마치고"로 써야 옳다. 보통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판결문을 받아 보고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또다시 외국어번역을 하듯이 해석을 요구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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