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왜 군비를 강화했나요? 소문에 의하면 나가오카번은 관동의 어느
번보다도 강한 무장을 했다던데요""그건 한마디로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싸우지 않기 위해섭니다""싸우지 않기 위해서 군비를 강화하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그게 말이 되나요?""중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한
무장이 필요하다는 뜻이지요. 힘이 없으면 자기 주장을 관철할 수가 없지
않겠어요? 우리 나가오카번이 군비를 강화했기 때문에 열번동맹에
가입하라는 요구를 물리칠수가 있었던 겁니다. 만약 무장을 튼튼하게 하지
않았다면 감히 그런 요구를 거절할 수가 있었겠어요? 거절하면 틀림없이
가만히 두질 않았을 거예요. 우리 번은 작은 번이거든요""그러니까 튼튼한
무장을 배경으로 해서 우리 관군의 요구도 거절하겠다 그건가요?"
이와무라는 빈정거리는 듯한 어조로 물었다. 가와이는 약간 당황했다.
그러나 머리 회전이 빠른 그는 곧 입을 열었다.

"결코 그런게 아닙니다. 처음부터 말씀 드렸듯이 신정부에 대해서 우리
나가오카번은 공순의 뜻을 굳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절이란 있을
수가 없지요. 거절을 하려는게 아니라,탄원을 하려는 거이지요. 여기
우리 번주께서 정부군의 대총독이신 아리스가와노미야 도노께 드리는
탄원서가 있습니다" 가와이는 하오리 속에서 탄원서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두 손으로 공손히 이와무라 앞으로 내밀었다.
이와무라는 얼른 받질 않고,잠시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듯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다가 반듯하게 내리뻗은 콧대에 살짝 주름을 접으며
마지못하는듯 받았다.
두루마리로 된 탄원서를 펼쳐서 읽어 보고난 이와무라는 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에 잠기는듯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쥐고있던
탄원서를 방바닥에 떨어뜨리듯 손에서 놓아 버렸다.

"나로서는 이 탄원서를 받아들일수가 없소. 결코 공순의 태도라고
여겨지지가 않기 때문이오""그 탄원서는 우리 번주께서 아리스가와노미야
대총독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받아서 제출해 주신 다음 지시에
의해서 일을 처리하시는게 순서가 아닐까요?""그렇지 않소. 에도를 떠나올
때 이미 지시를 받았소. 공순의 태도가 명백히 보일 때에만 나가오카번의
중립을 용인하라는 것이었소. 그러니까 이 탄원서의 처리는 내 판단에
달린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