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원을 하러 왔습니다" "탄원요?" "예" "무슨 탄원을?" "우리
나가오카번의 정책을 말씀드리고, 그 정책에 대한 신정부의 이해를
구하려는 것이지요" "중립 정책인가 뭔가 하는 그것 말인가요?"
이와무라는 빈정거리는 투로 내뱉었다. 그러나 가와이는 조금도
불쾌한 기색을 얼굴에 내비치질 않고, 정중한 어조를 유지했다.

"우리 나가오카번의 마키노다다구니 번주께서는 교토에 수립된
신정부에 대해서 공순의 뜻을 굳게 가지고 계십니다. 그 증거로
한가지 분명한 사실을 들자면 오우열번동맹이라는 것이 결성되어
정부군에 대항하려 하고 있습니다만, 그 동맹에 가입하라는 요구를
물리친 일입니다. 스물다섯 개의 번이 동맹을 결성했습니다만, 우리
나가오카번은 그것을 외면했단 말입니다" "그건 잘한 일이오. 그렇다면
왜 우리 정부군에 가담을 하지 않는 거요? 공순의 뜻이 진정한 것
이라면 정부군에 가담해야 되지 않소?" "내가 보기에는 시대는 이미
바뀌었습니다. 왕정복고가 이루어져 교토에 신정부가 수립되었고, 에도
막부가 문을 닫았으니,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게
아니고 무업니까. 그러니 이제 더는 피를 흘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인
것입니다.

앞으로 흘리는 피는 아무 의미가 없는, 헛되고 어리석은 희생에
불과합니다. 오우열번동맹이라는 것이 바로 그헛된 피를 흘리려는
우매한 수작이지요. 이미 시대가 바뀌어 동북지방의 일부를 제외
하고는 전국의 번이 신정부측에 섰는데, 싸워서 도대체 이길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어림도 없습니다. 자살
행위지요.

그래서 우리 나가오카번은 그런 헛된 피를 흘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와무라는 얼른 뭐라고 입이 열리지가 않았다. 그 논조가 매우 타당
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이와무라의 그런 표정을 읽은 가와이는 자신을 얻은 듯 더욱 차분하고
논리 정연하게 자기의 소견을 개진해 나갔다. 마치 사십대의 대논객
(대논객)이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을 앉혀놓고 이치를 설득하는 것
같은 언변이었다.

"중립 정책이란 다름아닌 바로 그 헛된 피를 흘리지 않게 하는 정책
이지요. 이쪽이든 저쪽이든 좌우간 어느한쪽에 가담을 하게 되면 도리
없이 피를 흘려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서로 싸워서 피를 흘리는 일을 반대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