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격변속에서도 정치 사회 경제 전반적으로 놀라울 정도로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기득권이 무시되는 가운데서도 정치적안정이 유지되고 연8%
이상의 고속성장속에서도 완벽에 가까울정도의 경제안정을 되찾았다"

베트남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대만의 황계연대만무역진흥회 호치민무역
관장은 이것이 베트남을 가능성의 나라로 만드는 힘이 되고있다고 말한다.

"흔히들 저임의 손재주있고 창의력있는 노동력을 베트남 투자진출의
메리트로 꼽고 있지만 안정이 없다면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현지
진출업체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베트남은 지난86년이후 도이모이(개혁)정책을 펴면서 수 없는 변화를
추구해 왔다. 지난 88년부터 외국자본유치를 본격화하면서 92년말까지
60개월사이에 투자관련법을 80건이상 개정할 정도로 법체계를 뜯어고쳤다.
92년 4월에는 행정부의 권한을 대폭 강화시켜 공산당의 기득권을 현저히
약화시키는 쪽으로 헌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베트남은 이러한 가운데서도 중국 천안문사태,소련 유고슬라비아의
국가분리와 쿠데타등 사회주의국가가 개방과정에서 격는 정치적 혼란을
겪지않고 문을 열어왔다.

베트남에도 반대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말 보 반 키에트 수상은
베트남 최대의 역사인 5억5천만달러 규모의 남북간 송전선건설에 따른
재정부담문제와 조달비리가 불거지는 바람에 보수파의 대반격에 부딪쳐
취임이래 최대의 정치적 시련을 겪었다. 국내 진출업체들도 적지않게
긴장된 순간이었다.

당시 국회의 결론은 이러했다. "베트남은 달리는 자전거와 같다. 키에트를
계속 밀지않으면 지금까지의 성과는 물거품이 된다. 그러나 속도는 조절
해야한다"베트남의 민의는 "변화속의 안정"이었던 것이다.

포철의 현지투자법인인 포스비나의 신동백부사장은 "도이모이의 부작용
으로 생기는 빈부격차심화등에 불만이 있는 지식인들이 있어도 이들의 힘이
결집되지 않는 점이 정치안정을 이루는 요인이 되고있다"고 말한다.

조영복 무공 호치민무역관장은 이에대해 "월급이 50$선에 불과한 최고정책
결정권자들의 청렴한 개혁의지가 베트남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있다"고 평가
한다. 중하위직 관리들에게 문제점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도이모이 주체세력
들의 깨끗하고 강력한 지도력이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있는
점이 안정의 바탕이 되고있는 것이다.

키에트정부가 특정부문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 즉각 시행된다.
올해부터 눈에띄게 달라진 것은 세관통관절차이다. 공항부터 몰라보게
달라졌다. 지난연말까지만도 공항통관시 여행객의 모든 소지품을 뒤졌으나
올해는 여행객이 신고하는 사항만 체크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입국시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2시간정도 걸리던 것이 예사였으나 올해부터는 불과
20여분만에 출구를 나설수 있다. 후진국으로 갈수록 중앙정부의 지시가
시행관청에서 시행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지만 베트남은 달랐다.

급속한 변화와 급성장으로 물가상승 환율불안등의 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도 믿을수 없을 정도로 빨리 치유되어 안정을
되찾고 있다.

베트남에서 가장 유력한 영자일간지 "베트남뉴스"는 지난1월 8일자 1면
머리기사로 베트남정부의 93년도 10대 성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첫번째를 물가안정으로 꼽았다. 87년도 7백%였던 인플레가 91년에 67%,
92년 17. 5%에서 93년에는 5%이내로 잡혔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인플레가 심해 금을 사모았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우엔 두이 레 호치민상의국제부장의 설명이다.

환율도 완벽할 정도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92년 1달러에 1만4백30동
(베트남화폐기준)하던 환율이 93년 1만8백동을 유지했고 올해초도 여전히
1만8백동선에 머물러있다.

"포철에서 핫코일을 들여와 아연도강판으로 가공해 내수판매하는 포스비나
로서는 환율안정으로 경영실적 개선에 큰 도움이 되었다"신동백부사장의
설명이다.

특히 키에트정부가 91년부터 2000년까지 10년동안의 목표성장율을 연평균
8%로 잡은 것을 보면 경제안정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미국의 엠바고(금수
조치)해제로 외국인투자가 봇물 터지듯 밀려들것과 중국이 개방이후 연평균
12~13%의 고속성장을 거듭해온 점을 감안한다면 베트남의 이같은 목표
설정은 그만큼 안정을 중시하는 것으로 풀이되고있다.

"9~10%의 성장만 이뤄져도 급격한 변화를 초래해 경제안정화에 바람직하지
못하다" SPC(국가계획위원회)의 우엔 반 흥박사는 이것을 베트남식
경제라고 말한다. 그는 태국 말레이시아등 인근국가보다 사회간접자본이
미흡한 마당에 급성장으로 물가와 임금이 급상승하면 결국은 외국기업의
대베트남투자를 위축시킬 수있다는 계산을 하고있었다.

베트남에 대한 외국기업의 투자가 개방 첫해인 88년도에 37건 3억6천만
달러에 그쳤던 것이 91년도에 1백55건 11억9천만달러,93년에는 2백57건
25억5천만달러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베트남정부가 구사하는 경제정책은 서툴지만 운용면에서는 강한 지도력
으로 균형감각있게 실행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베트남의 기업인과 국민
들에게는 국제화와 개방화의 물결을 함께타고 변화의 길목을 지키게
만든다.

외국기업에게는 미더운 투자대상국으로 여겨지게 만들고있다.
"올해 외국인 투자는 지난해의 1.5배인 38억달러는 될것이다. 대형프로젝트
가 추가로 성사된다면 2배로 불어나는 것은 일도 아니다"

SCCI(국가투자협력위원회)의 우엔 테 흥 산업투자담당관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그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