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지방에 나가오카(장강)라는 번이 있었다. 칠만석의 작은 번이었다.
그러나 다른 소번(소번)들과는 달리 매우 탄탄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최신 무기로 무장한 강한 군사를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특이한
정책을 쓰고 있었다. 중립 노선이었다.

동북지방에 있는 스물다섯 개의 번이 보조를 같이해서 동정군에게
대응하기 위하여 동맹을 결성했는데, 그것을 오우열번동맹(오우열번동맹)
이라고 하였다. 그고장을 오우지방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센다이번(선 번)이 주동이 되어 만든 힘의 결집이었다.

그 동맹에 나가오카번은 가입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막부를 무너뜨린
유신정부 측에 가담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이편도 저편도 아닌, 독자적인
노선을 걷겠다는 것이었다.

그무렵 "히요리미"(일화견)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날씨를 살핀다는
뜻인데, 천하의 대세가 어는 쪽으로 기울어질지 확실히 알 수가 없으니,
형세를 관망하는 번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작은 번들은 대개가
히요리미번에 속했다. 유신정부 쪽이 득세하면 그쪽에 붙고, 막부진영이
다시 일어서면 그편을 쫓으려는 것이었다.

후시미와 도바의 싸움에서 막부군이 패하여 요시노부가 오사카에서
에도로 야간 도주를 하고, 동정군의 에도 원정이 시작되자, 그때 이미
관서(관서)의 히요리미번들은 전부가 유신정부 측에 붙어 버렸다.
그리고 에도를 무혈로 점령하고, 막부가 문을 닫자, 이번에는 관동
(관동)의 히요리미번들도 하나둘 동정군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나가오카번은 그런 히요리미번들과는 달리 동정군의 요구도
거절했다. 동정군은 종전에 막부 진영에 속했던 관동의 여러 번들에
대하여 이미 시대가 바뀌었으니 자기네에게 가담하여 동북지방의
원정에 동참하기를 요구했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협조하는
뜻으로 돈이나 식량을 내놓도록 요구했다. 군비에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나가오카번은 그런 요구를 다 거절했던 것이다.

그처럼 나가오카번이 중립을 표방한 것은 막부시대가 끝나고, 명실
공히 천황 중심의 새로운 정치가 펼쳐지게 될 때 발언권을 크게 확보
하려는 속셈이었다. 어느 한편에 종속되어 가지고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미 에도 막부가 문을 닫아 막번체제라는 봉건제도가
무너졌으니, 새로운 시대에는 중앙정부에의 예속이 아닌, 지방자치를
실현해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포부를 지니고서 중립정책을 밀고나간 사람은 번의 필두가로
(필두가로)인 가와이쓰구노스케(하정계지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