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는 그 해 절기를 따라 일찍 들기로 하고 늦게 들길로 한다. 일찍
들때는 음력설 이전이 되고 늦게 들 때는 그 이후가 된다. 올해는 설
엿세전인 오늘이 입춘일이다. 엄동설한 영하의 날씨속에 봄 절기가 선뜻
다가온 것이다.

곳곳에서 설쳐댄 떼강도들의 어두운 그림자,모두의 눈쌀을 찌푸리게 한
정계 일각의 "돈봉투"사건의 불투명성,근본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채
표류해 온 낙동강오염의 정책부재등으로 얼룩진 고난의 겨울이기에 불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은 설레이게 된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겨우내 죽었던 나무가지와 풀들에
새싹이 돋아나고 얼어붙었던 강물이 풀리고 땅속에서 잠 자던 벌레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생명의 경이와 신비를 일깨워 준다. 생명이 부활하는
계절이라 여름의 성장과 가을의 성숙을 기약해주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봄은 겨울에서 잉태된다. 또 겨울은 봄의 화사함과 여름의 숙성함,가을의
풍요로움을 갈구하게 한다. "엄동의 빙하위에서/나는 한 여름의 찬란함을
간직하고/황랑하게 쌓인 눈만에/따뜻한 장미송이를 보라"는 미국의 시인 R
에어슨의 시상을 떠올리게 한다.

옛 세시품속을 들춰보면 입춘일은 한해 길흉을 가름하는 출발점이었다.
사대부나 민간,도시나 시골을 가릴것 없이 각 가정에서는 대문 기둥
대들보 천정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 붙였다. 입춘축이라는 것이다.
"입춘대길" "국태민안" "개문만복래" "부모천년수"등 한해의 평안을
지원하는 글귀들이라,글씨를 쓸줄 아는 사람은 손수 쓰고 글씨를 쓸줄
모르는 사람은 남에게 부탁하여 써 붙였다. 상중에 있는 집에서는
입춘축을 써 붙이지 않았다.

대궐에서는 내전의 기둥과 난간에다 설날에 문신들이 지은 연상시들
가운데 좋은 것을 골라 써 붙이거나 관상감에서 써 올린 사문을 붙였다.
우리 조상들은 입춘축을 집안에 써 붙임으로써 모든 액을 물리치고 복과
건강과 안녕을 가져 올수있다고 믿었다,벽사사상이다.

봄을 알리는 절기가 다시 찾아 왔지만 아직도 매서운 추위와 물산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겨울기운 만큼이나 우리 주변을 스산하게 하고
우울한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 비과학적인 일이지만 대길의 한해가 되길
비는 격사문이라도 써 붙이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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