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활짝 밝아 아침이 되자,전투는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여전히 비가
내리는 속에 동정군은 총공격을 감행했고,창의대의 대원들은 결사의 각오로
항전했다.

포격과 총격전에 이어 여기저기서 백병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칼과 창을
휘두르며 맞붙어 서로 베고 서로 찌르는 처절한 싸움이었다. 죽어 뻗어진
시체와 부상을 당하여 나뒹구는 몸뚱이들이 발에 밟힐 지경으로 널렸고,
낭자한 피가 빗물에 씻겨 시뻘건 물줄기를 이루며 흘렀다.

동정군의 총지휘자인 오무라마스지로는 에도성의 맨 꼭대기인 천수각에서
멀리 우에노의 도에이산 쪽을 바라보며 전투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이 그의 작전 지휘소인 셈이었다. 작전 계획을 세울 때는 몸소 행상으로
가장하여 지도를 작성하는 그런 열성을 보이기까지 한 그였으나, 막상 공격
이 시작되자 뒷전에서 멀리 관망을 하는 자세를 취했다. 자기로서는 할만큼
다했으니, 이제 싸움은 실전을 맡은 부대 책임자들에게 일임하고, 결과를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다는 태도였다.

정오가 되어도 승전의 소식은 오지않았다. 오무라는 속으로 은근히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꼭두새벽에 공격을 개시하면 어쩌면 오전중에 일이 끝날지도
모른다고 혼자서 낙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무라가 그런 낙관적인 판단을 하게 된 첫째 요인은 전력의 비교에서
월등하기 때문이었다. 우선 군사의 수효도 두 배일 뿐 아니라, 무기의 수량
과 성능에 있어서도 월등했던 것이다. 대포는 상대측이 네 개인데 비해서
자기네는 무려 그 열배 가량이나 되었고, 총도 상대는 구식인데 비해
자기네 것은 대부분 신형이었다.

그런 전력의 차이뿐 아니라,오무라가 단단히 기대하고 있는 것은 특수한
작전계획 때문이었다. 사이고가 작전지도를 보고 이건 뭐냐고 물었을 때
그건 비밀이라고 했던 그 점선과 동그라미 기호로 표시된 특수부대의 특수
작전 말이다. 그 작전이 계획대로 성공만 한다면 일은 충분히 오전중에
끝날수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점심을 먹고나서도 별다른 기쁜 소식은 없었다. 저항이 예상했던 것보다
완강해서 순조롭지가 않으나,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을
뿐이었다.

"도대체 그 부대는 뭘 하고 있는 걸까" 내리는 비에 희뿌옇게 가려서 잘
보이지도 않는 우에노의 도에이산 쪽을 창밖으로 내다보며 오무라는 볼멘
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그부대란 말할 것도 없이 비밀작전을 맡은 특수
부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