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관료들은 마치 그룹기업의 타스크포스가 팀플레이 하듯이
움직인다. 말레이시아는 총리가 산업현장을 세일즈맨 처럼 뛴다.
싱가포르는 재무장관이 정보통신 인프라의 육성을 위해 정보통신장관을
겸직한다. 경제발전국 차관이 국가전산위원회의 실무책임을 맡는다.
21세기에 대비하는 국가의 당면 정책과제를 중심으로 관료조직이 그때
그때 변신하는 것이다.

관료조직은 오직 행정의 효율과 국가경쟁력을 위해 유기적으로 짜여지고
재편성된다.

"싱가포르는 외국자본과 첨단기술을 끌어들이기위해 1주일내에 지하철
노선까지 바꾸는 나라입니다" 현대건설 싱가포르지사장 정탄걸지사장은
"싱가포르 테크(TECH)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싱가포르 정부기관들이 보여준
기민한 협조체제는 마치 그룹계열사에서 차출된 인력들이 신규프로젝트를
추진하기위해 총력전을 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
나라에서는 부처이기주의니 관료의 무사안일이니 하는말 자체를 들어보기
힘들다.

작년 9월말 싱가포르경제발전국(EDB)이 유치한 테크반도체공장은 하필
신설 지하철옆에 위치하게 됐다. 반도체공장의 진동문제가 거론되자
투자를 주선한 싱가포르 경제발전국(EDB)은 즉시 지하철공사(MRT)에
노선을 옮겨주도록 요청했다.

지하철공사로 부터 OK사인이 나오자 시공자인 현대건설측에 노선계획을
바꾸도록했다. 역사를 5백m나 이동시키고 노선도 굽어지게 재설계하기로
결정,반도체공장에 진동영향을 제로로 만들어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이것이 이뤄지기까지 불과 1주일 남짓. 싱가포르관료조직의 유기적인
팀플레이는 한국적 경험에 비추어보면 거의 전광석화라는 느낌이 들정도.
싱가포르 관료의 발상기법과 사고의 방식은 분명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소득의 절반수준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말레이시아
이지만 이 나라는 총리부터 비즈니스맨이나 다름없다.
작년 11월27일 말레이시아의 콸라룸푸르에서 현대자동차의 합작공장
설립조인식이 열렸다. 이날 조인식에는 마하티르 총리가 참석, 축사를
하게됐다.

마하티르총리는 이날 현대에서 만든 뉴그랜저승용차를 손수 몰고
조인식장에 입장, 참석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현대차에 대한 즉석 품평을 했다.

"생각보다 훨씬 성능이 우수하다. 디자인도 일제나 미제에 비해
손색이 없다. 한국과 손잡기를 잘했다고 확신한다" 한나라 총리가
외국자동차회사의 현지투자조인식에 다른 일을 제쳐놓고 기꺼이
참석한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감각으론 뜻밖이다. 이날 마하티르총리가
기획연출한 차시승 이벤트는 말레이시아에 조심스럽게 첫 제조업투자를
하는 한국최대의 그룹인 현대로 하여금 장래 투자에대한 자신감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관료의 감각과 발상기법만이 행정효율의 마스터키는 아니다. 조직의
유기적인 관리야 말로 그 밑거름이다.
그런측면에서 싱가포르가 새 국책사업인 영화산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조직체계의 효율성은 단연 돋보인다.

싱가포르 경제발전국(EDB)은 싱가포르영화제의 고정 후원자이면서
싱가포르 청년 영화인들에게 재정지원도 해준다.
싱가포르 경제발전국은 우리나라의 경제기획원과 무역진흥공사기능을
합쳐놓은 것과 같은 경제부처이다.

경제부처에서 영화진흥업무를 맡는다는 것은 우리 경험에 비추어 언뜻
이해하기 힘든다.
티모시 세바스찬 경제발전국 국제비즈니스 및 마케팅담당자의 설명을
들어보면 납득이 간다.

"공연예술은 부가가치가 높은 성장산업이다. 동시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주라기공원에서 보았듯이 하이테크산업이기때문에 경제발전국에서 영화
산업진흥을 맡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만약 취약한 교통인프라를 앞당겨 확충하기위해 예산을
쥔 경제기획원에서 직접 나섰다고 생각해보자. 교통부나 건설부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싱가포르는 총론적인 정책보다는 단위 프로젝트 중심으로 행정이
이뤄진다. 그러다보니 싱가포르에는 유달리 여러직책을 겸직하는
사람들이 많다.

테오 체현씨는 재무부장관과 정보통신장관직을 겸하고 있다.
정보통신인프라의 구축이 이 나라의 최우선 국책사업으로 등장하자
재원을 틀어쥔 재무부장관이 이일을 함께 맡게된 것이다.
싱가포르의 외국인투자유치 실무총책인 탄친남 경제발전국차관도
국가컴퓨터위원회(NCB)의 살림까지 책임지고 있다.

싱가포르 아세안 컨설팅의 로버트본박사는 "이같은 겸직인사는 외국인
투자유치를 정보화산업위주로 전개하려는 의도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는 마치 새로 참여한 첨단업종을 일으킬때 주력기업의 인재들을 대거
파견하는 그룹기업의 인사방식 같다"고 분석했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관료들의 기민성과 조직의 유기적인 협조체제의
비결은 무엇인가. 관료들이 뛰게하는 시스템이 돼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KOTRA격인 MIDA(산업진흥청)로비에 들어서면 첫 눈길을
끄는것이 즐비하게 걸려있는 상장이다.

말레이시아 상공회의소가 매년 기업에 가장 친절하고 효율적인 행정을
편 정부부처와 국가기관을 평가해 주는 "효율성상"(Efficiency Award)
이다.

라우펭럼 산업진흥국장은 "정부기관으로선 가장 영광스런 상이 아닐수
없다. 행정은 서비스, 공무원은 서비스맨이라는 말레이시아의 신조다.
그렇다면 기업이 소비자적인 관점에서 관청을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상공회의소나 전경련이 경제부처나 민원관계
기관의 서비스수준을 평가해서 시상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우선 발상자체가 힘들거니와 아마 서비스평점을 낮게 받은 부처나
기관의 눈치를 보느라 시상제도가 1회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싱가포르에 근무하는 한국인 상사원이나 해운 항공회사 직원들은
싱가포르 해운항만청이나 공항관리공단에 들어갈때 마다 세일즈하는
공무원들과 마주치게 된다. 관리부서 직원들까지 입버릇 처럼 "연수
시설을 이용해 달라"거나 "강당을 쓸 필요가 있으면 즉시 연락해달라"
는 판촉활동을 한다.

"기업마인드를 가진 공무원", 우리로선 이해가 안되지만 싱가포르에선
공공기관의 관리부서 직원까지 "이익기여평가제"가 시행되고있다. 그
평가결과는 연말 보너스지급과 승진인사에 그대로 반영된다. 싱가포르
공무원이 앞서 뛰고 머리를 굴리는데는 이같은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기때문이다. 공무원을 열심히 뛰게 만드는 기법이야말로 우리가
배워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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