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자사건으로 실명제위반과 변칙적 금융거래가 또다시 사회적 관심
사항으로 부각되었다. 여기에 대해 정부는 과거 수십년간 해왔듯이
관계자를 문책하고 무엇인가 제도를 바꾸어서 여론을 무마하려고 시도할
것이고, 아마도 여론은 시간이 좀 지나면서 몇 사람의 피를 본 후 또다시
발생할 다른 사건으로 관심을 옮겨갈 것이다.

제1차 금융실명제의 단기적 부작용을 중점적으로 치유하기 위해서
통화공급을 대폭 늘리고 부동산거래를 봉쇄한지 몇 달이 지난 현시점에서
터진 장영자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이제는 "제도적"으로 차명과 도명까지
막아야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가명거래를 막는데 들어가는 이월된 사회적 비용이 금년내내 우리생활에
나타날터인데 그것이 아직 계산도 되지않은 시점에서 충분한 검토없이
조급한 국민성에 영합하는 새로운 조치가 나올까 두려움이 앞선다.
그렇다고 비리가 계속되도록 놔두라는 얘기는 더욱 아니다. 왜 금융
기관들이 적극적으로 차명거래를 조장하고 돈 가진 사람들이 유혹하는지
정확히 알고 우리사회구성원들이 비리를 계속할 수 밖에 없는 원천을
해결하라는 얘기다.

금융실명제의 근본취지는 지하경제의 노출에 있는데 그 지하경제를
유지시키는 원동력은 정격유착, 탈세, 사채시장이용, 무자료거래 등을
통한 각종의 비자금이다(기업등 조직체뿐 아니라 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물론 이러한 비자금은 또다시 합법적 정상거래를 뛰어넘어 "특별한 이익"
을 추구하거나 최소한 "남보다 손해"를 보지않기 위해 매우 은밀하게
사용됨으로써 엉터리 제도와 나쁜 관행의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그런데 우리사회가 발달이 되고 개방화의 추세가 진행되면서 이와같은
비정상적 거래관행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겠다는 사회적 욕구는 더욱
강해지는 환경에 처 하고 있다.

고학력화, 전반적 소득수준의 향상, 다양성과 질의 향상을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관, 생명론적 자연관이 자리를 잡아가는 사회에서는 모든
경제주체들이 "자부심"을 느낄수 없으면 직업 자체를 포기하려 할것
이다.

한국의 기업경영자들도 이미 상당부분 이 경지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
그들은 대부분 경제적 여유, 학력, 가족관계, 기타 여러 측면에서 볼때
기업가의 사회적기능을 주위에서 인정받는 맛에 각종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지, 돈을 끌어모아서 편안하게 지내보자는
수준은 벗어났다고 판단된다. 그들은 실명제때문에 각종의 거래가 노출될
가능성을 높게 보는게 아니라 비자금을 사용할수 없으면 자기가 책임지고
있는 기업의 생존에 위협을 느끼면서,또 비자금의 조성과정에서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직원들로부터 오해를 받는줄 알면서도 그 일을 해야하는
현실을 서글프게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업의욕이 생겨난다면
지극히 이상한 일이다.

현실에 안맞는 법규정, 지나친 행정규제뿐 아니라 금융기관이나 다른
기업들과의 거래에서 음성적으로 소요되는 수많은 기밀자금은 모든게
"회소성"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따라서 그 "회소성"을 제거해주지
못하는 한 남보다 유리하게 먼저 고지를 점령하여야겠다는 취지의
"비자금의 조성.사용"은 피할수 없고, 또 이것은 금융실명제의 정착울
계속 가로막을수밖에 없는 장애물이 될것이다. 들키면 재수없는 특수한
경우로 치부하고, 안들키면 누이좋고 매부좋은 체제하에서는 감독기관
권력기관만 활기차지 사회 각부문은 잠재적 죄인이 되는 마당에 무슨
창의성과 활기를 기대할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수 있을까.
첫째는 모든 제도.관행의 수립에 있어서 스타일중시.단기 효과중심의
자세를 버려야 한다. 대표적으로 가격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급이 이뤄질수 없기 때문에 "회소성"이 나타나게 되고,
그 회소성하에서는 뇌물이든 판촉비든 정경유착이든 생겨날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단속"으로 대처하면 "잠복"으로 응수한다. 금융기관도
금융상품가격이 모양만 좋으라고 자금수급을 제대로 반영않고 있는
체제하에서 과당경쟁하지말자는 결의나 하고 있어서는 차명금지가
아니라 모든 금융인들을 몸수색해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다. 중소기업
들이 사채전주들을 계속 찾을수밖에 없는 이유는 중소기업들에 낮은
대출이자율을 받도록 강요하는 정부규제에 있다.

둘째로 정상적으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세제와 세정이
필요하다. 모든 지출이나 수입은 위법성이나 가치판단없이 그대로
세금계산에 반영해줄 필요가 있다. 우리의 세제는 기업의 활동비계산에
있어 자본금과 매출액에 연결시키는 손금인정 한도가 있다. 그 한도를
넘어선 지출은 실제 발생해도 손금으로 인정되지 않기때문에 실제
지출액과 세법상 한도와의 차이는 결국 비자금으로 메울수밖에 없게
된다.

또 그 비자금을 만드는 과정에서 각종의 오해가 사내외에서 생기기도
하고, 협박을 당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물론 사회가 어려워질수록,
세수부족이 심한 상황일수록,제도금융권이 왜곡될수록 그 정도는 심해
지고, 관행이 이럴수록 제도는 비현실적으로 경직화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러므로 지출상대방이 분명한 경우 모든 지출은 세법상 손비로 인정해
주고 대신 그 상대방의 판매보고서를 확인함으로써 세수를 확보하는게
정상화의 길이다. 또한 부가가치세든 종합소득세든 영수증을 받는게
유리하게 되는 세법개정이 필요하고 대신 세율은 과감하게 인하하는게
정도이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