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의 기업의 위치, 그것은 글자 그대로 대단하다. 기업과
기업인의 역할은 충분히 인정받고 존경받는다. 기업이나 기업인을
부도덕의 상징처럼 여기는 풍토와는 거리가 멀다.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기업이 강한 국제경쟁력을 갖게된
데는 사회전체가 기업중심으로 움직여간다는 사실이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

일본사회가 기업중심이라는 점은 곳곳에서 포착된다. 기업인이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 경제계의 역할도 어느나라보다 크다.
경영자나 근로자나 모두 회사의 이익이 최우선 목표다.

이 사회에는 두명의 총리가 있다. "재계총리"로 불리는 경단련
(경제단체연합회)회장이 또 한명의 총리이다. 일본에서 재계총리란
표현안에는 우러러보는 존경의 마음이 깃들여있다. 경제대국 일본을
앞장서 이끌어가는 상징으로 인정받는다.

기업인들이 존경을 받기 때문에 그사람처럼 되기위해 직장일을 충실히
하는 많은 "회사인간"이 나오게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사회전체가
기업중심으로 움직이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있다.

경단련 아시아부의 하야시 간지(임관이)씨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인
들은 일본을 부러워합니다. 단기간에 놀랄만한 경제도약을 했기 때문
이지요.
그주역들이 바로 기업인입니다. 국민들이 정치인보다 경제대국 오늘의
일본을 있게 한 기업인들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은 아주 당연한
현상입니다" 4대 경단련회장을 지낸 도코 도시오(토광민부) 전도시바
(동지)회장, 기술의 신 혼다 소이치로, 경영의 천재 마쓰시타 고노스케도
모두 일본국민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기업인들이다. 비단 한두사람의
걸출한 기업인만이 아니라 일본사회에서는 기업을 키웠다는 사실을
얼마든지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또 인정해준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정반대다. 기업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대단히 부정
적이다. 기업인에 대한 존경여부를 물은 한 언론기관의 조사에서는
존경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0%를 넘었다. 기업인들이 부자가 된 데도
부정한 방법을 썼을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기업인은 윤리수준이 낮은 대표
적인 부류로 뽑혔다. 19개 직종중에서 17위를 기록, 꼴찌에서 맴돌았다.
특히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가야할 젊은층 고학력층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더욱 높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에서 굴지의 기업을 이끄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없이 공사구별과
인간존중의 철학을 엄격히 지켜왔습니다. 공사의 구별이란 기업을
개인의 사유물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야시씨의 지적대로
"기업은 공기"란 철학이 일본기업들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세계적인 혼다(본전기연공업)사가 대표적인 공기이다. 회사에는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본전종일랑)의 친인척이 한사람도 없다. 장남까지도
엔진회사를 차려 혼자힘으로 일어서도록 했으며, 62년당시 상무로 있던
친동생을 해임시켰다. 이유는 단지 가족기업이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
었다.

그러나 일본기업들이 원래부터 바른 모습만을 보여온 것은 결코
아니다. 미쓰이나 미쓰비시같은 재벌들이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와
결탁해서 자본을 축적하고, 일본국민들을 전쟁의 참화속으로 집어넣은
것은 웬만한 일본사람이면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전후 기업들은 경제성장을 위해 매진했고 일본국민들도 달라진
기업의 모습에 예전의 흠집을 덮어주는 아량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기업들이 그 사회적 책임을 다할수 있게되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자본주의 초기과정에서 빚어진
"기업비리"를 "기업의 모든것"으로 단정짓는 것은 잘못이라는 얘기로
통할수 있다.

일본사회가 기업중심으로 굴러갈수 있는 이유를 법인자본주의(Company
Capitalism)란 기업소유구조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날 일본에는
대기업이 있을뿐 대재벌은 없다고 한다. 세계굴지의 마쓰시타전기산업이나
도요타자동차 소니등이 모두 한두사람의 창업자에 의해 성장했지만 이미
소유주식의 분산을 통해 국민의 기업으로 자리매김을 받고 있다는
얘기이다.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도쿄증권시장 1부시장 상장기업중
한개인이나 가족이 30%이상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은 한군데도
없다.
기업의 주주는 은행 보험등 일본국민들의 돈으로 운영되는 법인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법인자본주의의 내용이다.

법인자본주의라는 일본기업의 소유구조는 은연중에 일본인들이 기업
이익을 앞세울수 있게 만든다.
열심히 근무해서 남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이 아닌가 란 의심을 없애
주는 효과를 낸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에게 직장이 주는 의미는 기본적으로 제2의 가정이다.
경영자나 근로자는 서로를 한가족으로 여기고 회사의 이익을 먼저 생각
하며 일한다.

사회전체가 기업을 중심으로 움직이다보니 기업단체인 경단련이 하는
일도 자연 방대할수밖에 없다. 국가의 행정개혁을 기안하는 것은 물론
자위대원의 유엔평화유지군파견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일까지 한다.
엔화수준이 적절치 못하니 시정해달라고 요구하는등 경제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더욱 강력히 자신들의 입장을 밝힌다.

정부도 기업이나 경단련이 내놓는 의견은 존중하고 이를 적극 받아
들인다.
특히 영향력이 큰 경단연의 경우는 음의 정부 로까지 불린다. 그러나
재계의 영향이 크다고 해서 그것을 정경유착에 의한 부패구조로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공장을 짓기 위해 매입한 땅까지 부동산투기로
몰아붙이는 우리와는 천양지차다.

국가경쟁력강화란 명제는 곧 기업의 경쟁력강화를 의미한다. 기업을
국가경제의 중심으로 인정하고 과거 잘못이 있더라도 허물을 덮어주고
보다 육성시키려는 국민의 따뜻한 애정이 절실하다. 국민의 인정을
얻기 위한 기업 스스로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