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국에 가서 얼마 있다가 후진국경제발전에 관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 이유는 미국유학때 경제발전학을 전공했으나 "이렇게 하면
후진국경제가 발전할수 있다"라고 확신할수 있는 경제이론을 찾아볼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경제학을 배우고 자기나라에 돌아가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남미의 경제학박사들이 그나라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던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생각했다. 인도 파키스탄 정부내에는
옥스퍼드 케임브리지등에서 공부한 경제학 박사들이 포진하고 있지만
경제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는것도 마찬가지였고 필리핀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들이 어느 특정 후진국경제를 발전시키는데
공헌했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나는 선진국이 공업화로 경제발전을 이룩했고 국민생활을 윤택하고 복되게
한것은 전화 TV 냉장고 자동차등 공산품을 대량생산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경제학자들은 후진국은 자기네
선진공업국처럼 공업화해서는 안된다는 그럴듯한 이론을 내세워 후진국
공업화에 제동을 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론에는 두가지 깨기 어려운 근거가 있었다. 첫째는 종교처럼 깊이
뿌리박혀있는 "비교우위론"이다. "후진국은 자본도 기술도 부족해서
공산품을 만들면 비싸고 품질이 나쁘다. 그러니 부존자원은 선진국
공업원료로 수출하고 그 대신 선진국 공산품을 수입하는 것이 후진국
국민들에게 값싸고 질좋은 소비재를 공급할수 있는 길이다. 그러므로
후진국은 공산품을 만드는 공업화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석유나 광물등 부존자원이 많은 나라는 몰라도 한국과 같이
수출할수 있는 자원이 없는 나라는 공업화도 못하면 어떻게 해야하느냐에
대한 해답이 선진경제학엔 없었다.

둘째는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는 케인즈 이론이다. 실제로 선진국경제
에선 무엇이든지 수요만 증가하면 생산확대가 가능해 "소비가 미덕"인 지출
증대 정책이 통했다.

그러나 후진국은 수요가 많더라도 생산을 증가시킬 능력이 없었다.
따라서 돈만 증가시키면 경제가 발전하는것 같지만 이는 착각에 불과한
것이 케인즈의 소비창출적 성장 이론이다.

이같은 이론들때문에 후진국에선 대출자금이 공업화를 위해 유효하게
사용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금융자율화로 수요만 창출하면 된다는 사고에
빠져 공업화를 위한 생산지원 융자정책이 외면되기도 했다.

아서루이스와 아르헨티나 경제를 연구한 라울 프레비시와 같은 학자들은
후진국이 공업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미국경제학자들의 압도적
비교우위론에 밀려 1970년이후에는 대학에서 후진국경제발전론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나는 5개년계획을 기안할때부터 공업화로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물자는
우리나라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공급위주의 전략"을 공장건설 리스트로
제시함으로써 비교우위론을 무시했었다. 이 공업화 전략을 정부가 추진한
결과 우리나라경제는 연간10%의 고도성장과 40%의 수출증대를 달성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의 책은 "공업화가 후진국 경제발전을 위해 절대불가결의
전략"이라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하기위해 과거 산업연관표작성때 얻은
지식인 "제조업발전은 국민경제전체를 발전시키는 기관차역할"이란 점을
바탕으로 골격을 잡았다.

동시에 고전경제학 이론이 후진국 경제발전에 오히려 뒷받침이 되리라는
생각에 아담 스미스,리카르도,세이,칼 마르크스,슘페터,콜린 클라크등의
저서를 필요것부터 읽기 시작했다.

나는 "야독은 주경을 위한것"이라는 신념을 갖고있어 집에선 가족들과
함께 뉴스만보고 세벽2시까지 글쓰기를 계속해 귀국할때까지 "Growth and
Development"(성장과 발전)이란 원고의 줄거리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