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한때에 곽거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몹시 가난했다. 가족은
연로한 모친과 아내,그리고 세살짜리 아이까지 모두 넷이었다.

곽거의 노모는 손자에게 자신의 몫인 음식물을 주곤 했다. 곽거는 그것을
마음 아파했다. "자식은 다시 낳을수 있지만 부모는 다시 얻을수 없으니
차라리 아이를 구덩이에 묻어 버리고 말자"는 결심을 하고 뒤뜰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구덩이를 두어자 가령 파고 들어 갔을때 땅속에서 덜커덩하는 소리가
났다. 그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파보았더니 큰 금솥이
있었다. 그솥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효자 곽거에게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다. 누구로 빼앗아 갈수 없느니라"

극단적인 일화이긴 하나 효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얘기해 주는
예가 아닐수 없다. 생명을 주시고 가없는 사랑과 희생으로 길러주신 부모의
은혜를 깨달은 자식이라면 그 어떤 일인들 못하겠는가. 그래서 동양사상
에서는 효도를 모든 행실의 근원이고 선을 행하는 근본으로 삼았다. 수많은
갖가지 죄중에서도 불효만큼 무겁게 내려진것이 없을 정도로 효도를 중시
했다.

그렇다면 효도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봉양과 경,사랑으로 부모를
지극정성껏 모시는 것의 총체다. 비록 진수성찬과 따스한 잠자리로
봉양한다 하더라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다른 짐승과 다를바
없는 단순한 행위일뿐이다. "논어"에는 "오늘날에는 효라하면 부모를 먹여
살릴수 있는것을 의미하는데 개와 말까지도 다 먹여 살려주는 사람이
있으니 공경하지 않는다면 짐승을 기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사회에는 자식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은 커녕 짐승취급도 받지 못하는
부모들이 있다는 사실에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게 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자식들인데도 생활능력이 없는 노부모를 돌보지 않아 부모의
자식상대 부양료청구소송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잘못 이식된 이기주의와 핵가족화의 결과라고 하지만 인간성 상실의
극단적 표징이 아닐수 없다. 이러한 현상이 사회에 만연되는 경우
자식들을 위해 희생의 삶을 살아갈 부모들이 있게 될지 앞날이 걱정된다.
다행히 법적으로 부모들이 부양금을 받게될수 있다는데에는 안도감이
가면서도 우울한 마음은 지워버릴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