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이면 영국의 최북단까지 가보자고 생각해서 서네스를 향해 글래스고를
떠났다. 영국의 산야는 곱게 다듬어진 정원같이 어디를 가나 아룸다운 풍경
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에 가까워지면서 점차 풍화작용으로
무너진 돌산과 바위를 살짝덮은 박토위에서만 자라는 헤더가 산과 들을
뒤덮어 나무가 자라지 않는 삭막한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었다.

북쪽으로 갈수록 인가는 별로없고 농막만 드문드문 있었다. 스코틀랜드
도시사람들의 주택수준은 잉글랜드와 비교해 볼때 크게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산이 점점 높아지고 호수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는데 호수 주변은 나무가
무성하고 경치도 좋았다. 지도만 보고 북쪽으로 가고있는데 예상치 못한
교통체증에 휩싸였다. 다리가 없는 강을 건너는데 조그마한 카페리 한척이
한번에 자동차 4대씩만 실어 나를수 있었다. 여행온 자동차가 한꺼번에
몰아닥쳐 강을 건너는데만 약5시간이 걸렸다.

서네스에 도착하니 시간은 밤12시가 넘었다. 호텔을잡아 투숙할 계획으로
왔으나 시간이 늦었고 호텔도 만원이었다. 좁은 차안에서 잘수도 없고 낭패
였다. 밤이늦어 사람들도 별로 없었는데 마침 지나가는 중년부부가 있어
그 도시에 사는 주민인줄 알고 투숙할수 있는방을 구할수 없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알고보니 그사람들도 여름휴가차 이곳에와서 술한잔하고 늦게 귀가하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런던에서 왔다고 하니까 지기네도 "사섹스 브라이턴"
이란 곳에서 여름휴가 떠난 친구집을 빌려 쓰고 있는데 집이 커서 방이
많으니 거기서 자고 가라고 했다.

영국에 살면서 영국사람들의 친절하고 예의바름에 감복하고 있었는데 이
중년부부의 자비심과 친절에 또한번 감탄했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는 이들이 자기들에게는 아이가 없다고 하면서 우리 딸과 아들을
귀여워하고 아침도 푸짐하게 대접해 주었다.

최북단의 스코틀랜드는 바다와 같은 호수들이 많아 스위스를 연상케하는
풍경이었고 스키장도 여러곳 있었다. 인버네스로 내려와 괴물이 있다는
"로크(Lock)네스"(로크는 호수라는 스코틀랜드말)를 찾았다.

네스호수 주위를 한바퀴 돌 작정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달리고 있을때
아이들이 "아버지,무서워요"하기에 차를 돌려 되돌아 나왔다. 네스호서쪽은
험한 산과 울창한 나무,그리고 수심깊은 물이 푸르기보다 검게보여 금방
이라도 괴물이 나올것같은 음산한 분위기였다. 수심이 3백80m나 된다는
것이다.

에든버러에서 호텔 여주인이 한국 사람으로는 처음 자기 집에 왔다고
좋아하며 밤에는 쿠키와 차를 주면서 한국에 관해 물어보고 흥미있어 했고
네스호에는 괴물이 틀림없이 있다고 우겨댔다.

유명한 에든버러성에도 들어가보고 나서 동쪽길을 따라 영국일주를 끝내며
런던으로 돌아왔다.

69년10월21일 주영한국대사관에서 대폭 개각내용을 알려주었다. 한국은행
조사부에서 친분을 쌓았던 김정류씨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영전하고 자금
부에서 책상을 나란히 썼던 남덕우 박사가 재무장관으로 임명된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축전을 쳤다.

며칠후 도착한 신문을 보니 남신임 재무장관이 긴축재정 추구 및 환율
적정화라는 정책의지를 취임 소감으로 밝히고 있었다. 내가 앞장서서
건의한 정책이 2년후에나 결실을 보게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후
통화량은 20%이내로 운용됐고 환율도 단계적이기는 했으나 달러당 4백원
까지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