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나가와(신나천)현 가와사키(천기)시에 위치한 이가라시(오십람)
전기제작소. 지난 52년 설립된 후 40년이상 소형직류모터를 전문으로
생산해 오고 있는 중견기업이다.

이회사는 지난 78년 음향모터를 생산하고 있는 한국업체의 요청으로
경북 구미공업단지에 자본금37만달러규모의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출자
비율은 49%. 합작회사는 생산제품의 30%를 일본에,60%는 구미에 수출하고
나머지 10%는 국내시장에 내다팔았다.

합작회사의 사업은 한동안 순풍에 돛단듯 풀려나갔다. 이가라시사와
거래하던 업체들이 대부분 합작회사의 거래선으로도 연결됐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한창 때에는 종업원수가 2백50명에 이르기도 했으나 이가라시사
는 한국진출 13년만인 91년 한국에서 완전철수했다.

이가라시사측은 한국에서의 철수이유에 대해 "당시 격렬하게 번졌던
노동운동이 합작회사에도 파급돼 생산계획에 차질이 빚어졌고 임금도
크게 올랐다. 게다가 원화까지 큰폭으로 절상돼 도저히 채산을 맞출 수
없었다"고 밝힌다.

이회사는 중국의 심 에 자사가 1백% 출자한 자본금 1억엔 규모의 회사를
새로 설립해 대체공장을 마련한 뒤 합작선에 보유주식을 모두 양도,한국
에서의 사업을 완전정리하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주력 해외공장은 중국
공장이 됐고 한국회사와는 하청관계만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야마구치(산구)현 소재의 미야마조선. FRP(섬유강화플라스틱)제
레저보트 어선등을 제조판매하는 기업이다. 이회사는 지난 90년 충남
홍성군에 자본금 20만달러(50%출자)의 합작회사를 설립했으나 1년도 다
채우지 못하고 91년 철수했다. 이회사는 철수원인에 대해 합작회사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품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이 주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합작회사는 한국측에서 경영의 책임을 맡고 미야마조선측은 기술및
판매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자본력이 부족한 한국의 합작파트너측은
제품을 완벽하게 만들기보다는 이익을 올리는데만 너무 신경을 쏟은
나머지 임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베테랑 근로자를 해고하는 등 현장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게다가 한국의 공장에는 고질병인 "괜찮아요"병이
만연해 있어 제품은 대부분 하자투성이였다고 미야마측은 술회하고 있다.

미야마조선 역시 대체투자처로 중국을 선택했다. 상해에 있는 일중합작
회사를 통해 이미 중국에서 많은 연수생을 받아들여 기술훈련을 시키고
있으며 조만간 합작회사도 출범시킬 예정이다.
일본중소기업사업단이 지난해5월에 발간해 내부자료로 보관하고 있는
"해외진출중소기업의 철수사례"란 보고서는 한국에서 철수한 기업의
사례를 이같이 자세히 싣고 있다. 이보고서에는 세계각처에서 철수한
기업의 사례를 27건에 걸쳐 소개하고 있지만 이중 6건이 한국에서 철수한
것이다.

비단 일본기업들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0개월간 우리나라를 떠난
외국기업은 51개사로 금액으로는 6천5백만달러에 달한다. GM등 대기업의
철수가 있었던 92년(3억6천9백만달러)보다 금액은 줄었지만 93년연간
철수건수는 전년수준(52개사)을 웃돌 것이 확실하다. 새로운 기업들을
자꾸 불러들여야 할 처지에 이미 왔던 기업들마저 발길을 되돌리고 있다.

국가전체적인 외국인투자유치실적을 보아도 투자여건의 열세는 뚜렷하다.
한국의 경우는 91년 13억9천만달러 92년 8억9천만달러 93년상반기 4억3천
만달러로 계속 감소하고 있으나 중국은 91년 1백19억달러 92년 5백81억
달러로 급증했다. 지난해는 상반기에만 5백87억달러를 유치,연간으로는
우리의 1백배를 넘는 1천억달러를 상회할 전망이다.

아시아경제연구소의 노조에 신이치(야부신일)국제교류실장은 "한국은
일본등 외국기업들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다수중 하나(One of Them)일
뿐이다. 오라는 곳이 널려 있는데 일부러 힘든 곳에 공장을 지을 이유는
없다"며 최근의 추세를 당연시한다.

한국이 가졌던 우회수출거점으로서의 매력이 이제는 완전히 사라졌다는
얘기다. 소득이 조금 높아지면서 씀씀이가 헤퍼진 국내소비자의 호주머니
를 노린 진출만이 외국인투자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외국기업들의 한국진출동기에서도 이같은 사실은 뚜렷이 뒷받침된다.
JETRO가 한국진출일본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을
우회수출을 위한 교두보로 활용키 위해 진출한 경우는 15%에 불과했고
한국시장에 대한 상품진출이나 높은 투자수익률을 기대해서란 이유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한국을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중간기지가 아니라
소비시장으로서만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기업을 받아들이는 것은 한국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외국기업의 진출은 고용창조
수출증대등을 통해 경제성장에 기여할 뿐아니라 앞선 기술을 습득할
수있는 좋은 루트도 된다. 이미 미국등 선진국에서는 외국에서 활동하는
자국기업보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기업이 일자리창조나 조세수입등에서
국가경제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인식까지 자리잡고 있다. 싱가포르가
선진국수준까지 진입한 것이나 아세안국가들이 한국대신 새로운 용의
자리를 넘보고 있는 것이나 중국이 활기찬 성장의 리듬을 타기 시작한
것이나 모두가 외국업체들의 진출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결과이다.

한국정부도 최근엔 외국기업진출의 중요성을 인식,유치를 위한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지난해 6월 외국인투자개방5개년계획을 예시하면서
92개업종을 제외한 전업종을 오는 97년까지 개방하겠다고 밝힌데 이어
외국인전용공단조성 행정규제완화작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또 임금 지가 금리를 하향안정시키고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며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한 세부담 완화할 예정이다. 미국등 선진국으로
부터의 세찬 개방압력도 한 원인이 됐지만 외국인투자의 부진이 가파른
성장세를 달려오던 한국경제에 제동을 걸고 있음을 늦게나마 인정한
결과다.

그러나 정부가 이같은 정책을 채택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외국인
투자증대로 연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외국인들의 투자는
노조에 신이치실장의 지적처럼 수많은 대상국들중 하나를 골라 잡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투자여건이 여타국가보다 앞서지 않으면 그들이
들어올 턱이 없다. 임금이 비싸다면 사회간접자본이나 부품조달 정책적
지원측면등에서 경쟁국을 앞서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점에서 아사미 노부유키(천해신행)JETRO해외조사부 아시아대양주
과장이 지적하는 말은 음미할 만하다. "한일재계가 협력강화를 약속하고
한국정부가 외국기업유치정책을 강화하고 있긴 하지만 일본기업의 한국
진출이 조만간에 크게 늘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본기업에 있어서 한국
이란 격심한 노사분규를 겪지 않으면 안되는 나라라는 인식이 뿌리내려
있다. 고생을 자초한다는 생각으로 해외에 나갈 기업은 없다.
일본기업들의 최대관심은 중국에 몰려 있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기업의
논리는 냉엄하다. 이윤이 창출되지 않는 곳은 찾지 않는 것이 기본철칙
이다. 외국기업, 특히 자본회임기간이 긴 제조업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선 그들 스스로가 우리를 찾을 수 있는 안정적이고도 매력적인 투자
환경을 스스로 가꿔가지 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