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찾아온 "저유가의 해"가 저물고 있다.

지난 28일 국제유가를 대표하는 미국의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배럴당
14.11달러로 5년만에 최저가를 경신했다. 연초에 비하면 배럴당 거의 6달러
가량 떨어진 셈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상황이 지난 86년의 유가 폭락 사태와
73년 아랍의 석유금수 당시와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다.

올해 유가하락의 원인은 만성적인 공급과잉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급외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90년 걸프전 이후 국제유가는 실질적인 소비수요가 아닌
투기적 거래수요에 의해 움직여 온 것이 사실이다.

올 2.4분기까지만 해도 국제 석유시장은 하루 1천5백만~1천6백만배럴가량
공급과잉 상태였다.

그러나 4.4분기에는 생산량만을 놓고 보면 약40만배럴의 공급부족 상태로
반전됐다. 지난 4.4분기중 OPEC원유에 대한 수요는 하루 2천5백20만배럴
이었으나 OPEC의 원유생산량은 2천4백80만배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가 속락한 원인은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무엇
보다도 유가 약세에 대한 OPEC의 대응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OPEC는 지난달 24일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올해 두번째의 정기총회
를 개최했다. 당시 유가는 연일 5년만에 최저가를 경신하는 상황이었으며
이에따라 각국의 석유관련 단체들은 감산과 같은 뚜렷한 대응방안이 나올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OPEC는 전례없이 이틀만에 총회를 폐막하면서 감산합의는커녕
유가부양을 위한 아무런 조치도 제시하지 못했다. 이같은 안일한 대응은
시장전반에 상당한 실망감을 안겨 주었음은 물론이다.

OPEC회담이후 한달 사이에 WTI최근월물 가격이 배럴당 2.5달러가량 떨어
졌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또한 OPEC에 속하지 않는 산유국들의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한 증산경쟁과
이에따른 OPEC 회원국과 비OPEC 산유국들간의 신경전도 최근의 유가하락을
부추긴 요인이었다. 현재 영국과 노르웨이등 북해지역의 산유량은 지난
90년에 비해 하루 1백40만배럴 가량 늘어난 5백만배럴에 이르고 있다.

OPEC각국은 최근 유가하락의 책임은 전적으로 비OPEC 산유국들이 져야
한다고 연일 비난하고 있을 정도이다.

최근 아랍의 석유특사인 빈 아메드 알 샨파리 오만 석유장관은 노르웨이를
직접 방문,북해산 석유의 판매를 줄일 것을 요청했으나 확실한 답변을
받아내지 못했다. 이같은 산유국들간의 갈등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내년 국제석유시장은 이라크의 시장복귀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이라크의 시장복귀는 석유 공급물량의 확대뿐 아니라 산유국들간의 시장
점유율을 둘러싼 갈등을 재연시킬 가능성이 높다. 쿼터량 재조정을 둘러싼
OPEC내부의 갈등과 함께 OPEC 회원국과 비OPEC 산유국들간의 시장점유율
고수를 위한 싸움이 예상된다. 이는 결국 유가 하락의 압력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제석유가격의 하락세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올 겨울 날씨가 예상외로 추워질 경우 석유가격은 점차 바닥권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충분하다. 29일 국제유가가 미국 중서부와 동부 해안에
한파가 몰아닥칠지도 모른다는 예보로 하루에 배럴당 30~40센트씩 오른
것이 그 한 예이다.

내년 1월23~24일로 예정된 비OPEC 산유국들간의 회의나 현재 조기 개최
가능성이 높은 OPEC의 유가감시위원회 회의에서도 모종의 조치가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KEEI)의 김인길 정보분석실장(40)은 "최근 유가급락
에 대한 산유국들간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어 내년 1.4분기중 유가의
반등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국제유가는 WTI 최근월물을 기준으로 배럴당 15달러선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강진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