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능력과 경력이 각각 3학점,행내여론 2학점,입행서열 4학점,나머지
8학점은 지염 학연등 각종 인연과 개인의 로비능력이다''어떤 은행원이
농담삼아 한 말이다.

임원이 되기 위한 ''임원학''을 총20학점으로 잡으면 대충 이렇다는 것이다.
임원이 되려면 능력도 중요하지만 각종 ''줄''이 절대적이라는 얘기다.

내년에 줄잡아 100여명의 임원이 중임이나 초임임기를 맞는다. 이 자리를
채울 임원의 학점은 어떻게 달라질지 관심을 끌고 있다.

"xx은행을 사랑하는 직원입니다. 내년 주주총회를 앞두고 xxx부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은행발전을 위해 절대 임원이 돼서는 안될 사람입니다.
은행 직원들에게 들어보시면 아마 그가 어떻게 지금의 자리까지 올랐는지
금방 아실겁니다"

은행원들이 망년회 무드에 휩싸인 지난주 기자에게는 이런 내용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특정 부장을 겨냥한 편지는 주로 그 사람이 임원이 돼서는
안되는 이유를 비교적 자세히 적고 있었다.

이 편지의 주인공이 은행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인지,아니면 그
부장과 라이벌관계에 있는 사람인지는 확실치않다. 분명한 것은 내년 주총
에서 선임될 임원자리를 둘러싸고 벌써부터 물밑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비슷한 성격의 투서나 진정서가 청와대등 힘있는 기관에 접수
됐다는 소문이 들리는것에서도 금방 알수있다.

은행의 별이라는 임원이 되려면 도대체 어떤 조건을 갖춰야할까.

"임원요,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90%이상 아닙니까. 나머지 10%는 운이라고
할수있죠"(H은행 모임원)라는 말처럼 개인의 능력이 임원학의 첫번째 과목
으로 꼽힌다.

아무리 개인적 관계가 판을 치는 은행인사라고 하지만 업무 수행능력이
떨어지거나 흠이 있는 사람을 임원으로 앉힐 수는 없다.

그 다음 과목이 경력.
종합기획부장 여신.심사부장 자금부장 인사부장등 주요 부서장과 핵심
점포장을 거쳤는지의 여부도 중요한 잣대가 된다.

서열과 행내여론도 빼놓을수없는 과목이다.

기은팩터링의 C부사장은 중소기업은행 직원들이 아까워하는 사람이다.
그는 입행2기(63년 입행)로 은행생활을 시작해 수신추진부장 여신기획부장
등 주요 부서장을 두루 거쳤다.

그러나 창업공신으로 통하는 입행1기가 부행장보를 독점하다보니 그에게
임원자리가 돌아올 기회가 없었다.

능력과 무관하게 자리가 없어 밀려나는 사람도 종종 있다는 얘기다.

임원학의 가장 중요한 과목은 뭐니뭐니해도 연이다. 그것은 흔히들 말하는
운일 수도 있고 능력일 수도 있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고 주요 보직을
거쳤다고 하더라도 은행장의 낙점을 받지못하면 그만이다.

한 국책은행의 H부총재보는 예상을 뛰어넘어 지난 4월 부총재보 자리에
올랐다. 지역배타성이 강한 이은행에서 호남출신인 그가 부총재보가 된데는
능력도 능력이지만 현정부의 실력자인 K씨의 중학교 동문이라는 학연이
알게모르게 작용했을 거라는 추측이다.

은행장과 지연도 학연도 없는 사람들은 연을 만들 수 밖에 없다. 은행원
들은 줄대기 방법을 크게 "압력형" "협박형" "읍소형" "흠집내기형"으로
나눠 부른다.

"압력형"이란 은행장위의 사람을 통하는 방법이다. 당대의 실력자들에게
줄을 대 은행장으로 하여금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방법이다.
은행장 자신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않을 수 없는 상황에선 이 방법은 가장
일반적이고 안정인 것으로 통했다.

"협박형"은 은행장의 비위사실을 잘 알고있는 사람이 자리를 보장하지
않으면 그사실을 폭로,동반자살을 감행하겠다고 협박하는 경우이다.

"읍소형"은 지연도 학연도 마땅치않은 경우 "그저 살려줍쇼"라고 매달리는
사람을,"흡집형"은 자신을 알리려는 로비에 그치지않고 투서등을 통해 경쟁
상대를 깎아내리려 애쓰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렇듯 적어도 올해까지의 임원학은 다소 기형적으로 커리큘럼이 구성
됐다.

내년엔 국책은행을 포함,무려 1백3명의 임원이 중임이나 초임 임기를
맞는다. 이 자리를 차지하기위한 경쟁은 세밑을 달구고 있다.

앞으로는 금융개방과 국제화 시대이다. 이 시대를 온전히 헤쳐갈 임원을
뽑는 자리가 내년이다.

문민정부의 실질적인 첫번째 은행인사이기도한 내년 주총에서 임원학의
구도가 과연 과거와 달라질지 사뭇 궁금한 연말이다.

<하영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