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장관이 경제각료로서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6.29선언이후
부터다.
민주화의 진행과 함께 폭발한 노사분쟁의 만연은 해당 사업장을
마비시켰을뿐 아니라 경제전체를 뒤흔들어 놓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시대에 억눌려 있던 노동문제의 중요성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고
그후부터 비중있는 인사들이 노동부장관에 기용되었다. 신임 남재희장관의
취임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라고 보이며 그의 소신과 균형있는 정책수완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우리가 현재 처해 있는 경제현실에서 보면 노동부장관은 통상이나 재정을
책임맡고 있는 장관들보다도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되었다고 할수 있다.
이것은 미국경제를 위기라고 진단한 클린턴대통령이 가장 핵심적 측근인
로버트 라이시("국가의 과제"저자)를 노동부장관에 임명한 사정과 다를바
없다. 또한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인적 자원에 달려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각종의 정책 제도 금융 기술등은 개방과 거래의 대상이지만 노동은
국가가 전적으로 의존할수 있는 자원이라는 사실과도 연관이 있다.
일본이 지난 30년동안에 세계 최강의 경제력을 구축한 반면에 미국은
세계최대의 채무국으로 전락한 것도 한마디로는 노동생산성의 저하로
설명할수 있다.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60년에서 90년사이에 년율 2.9%씩
늘어난데 비해 일본은 배이상의 속도인 6.9%씩 향상된 것이 경제역전의
주인인 셈이다. 1960년만 해도 일본의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29.8%에
불과했는데 30년간 생산성증가율의 추월로 지금은 일본 근로자들이 미국
근로자들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근로자가 세계 최고수준의 임금을 받게된 내면을 우리는 높이
인정해야 하며 또한 우리도 그렇게 해야한다. 그렇게 할 충분한 잠재력도
우리는 지니고 있다. 5~6년전만 해도 일본 근로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대가 한국의 근로자였다. 술자리에서 두사람이상만 모이면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 근로자들이 자기들을 바짝 쫓아오고 있다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미국 근로자를 추월한 일본 근로자들이 한국 근로자들에게
추월당할지도 모른다고 겁을 낸 것이다.
지금 그런 구조가 깨졌다. 일본은 한국을 눈여겨 보지도 않고
동남아등지에서 마음놓고 판을 친다. 자연히 우리경제는 주춤거리게
되었고 한국근로자들이 세계 최고수준의 임금을 받을 기회는 더 멀어졌다.
모자동차회사가 신차발표와 수요급증으로 적자탈피의 꿈에 부풀어
있는중에 노사분쟁이 발생하여 3백억원의 적자늪에 빠지는 형국이 되었다.
수년동안 한국경제는 경쟁국보다 훨씬 강도높은 노사분쟁을 겪었고
생산성과는 무관하게 경쟁국보다 높은 임금상승에 기업들은 허덕였다.
심지어 우리보다 1인당 GNP가 배가 넘는 나라보다도 노임코스트가
높게되었다. 기술이나 금융등 조건이 같다 해도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경쟁할수 있는 기업은 드물다. 그리고 경쟁력이 떨어지면 경제는
낙후한다.
6.29선언이후 항용 공정한 분배가 거론되었다. 사회적 일체감을 위해서도
이는 지극히 중요하다. 분배할것이 늘지도 않는데 많이 분배해야 하는
것이 공정한 분배는 아니다. 막대한 빚을 내서라도 생산성을 뛰어넘는
임금인상을 해야 하는 것이 공정한 분배는 아니다. 번것을 공정하게
나누는것만이 공정한 분배인 것이다. 그래야만 근로자도 기업도 꾸준하게
뻗어갈수 있고 노사분쟁의 소지도 없어진다.
공정한 분배의 차원에서 보면 지금 기업들이 가장 큰 속죄양이다.
금융거래도 채무자(기업)와 채권자(예금자)간에 일종의 소득이전인데
고금리로 기업소득이 너무 많이 이전될뿐 아니라 예대마진이 커서 중개자인
은행들이 많은 소득을 챙긴다. 세금도 기업소득의 정부이전이며 중세로
이것도 너무 많이 넘어간다. 거기다 임금까지 생산성증가율 이상으로
배분된다면 기업은 부실해질수 밖에 없다. 투자의욕이 살아날수 없다.
94년이 곧 닥친다. 국가의 주제가 국제화다. 그것은 경쟁력강화 없이는
남의 나라에 침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식 국제화의 불행을 막을수
있게 경쟁의 주체로 나서야 하는 것이 기업들이다.
경쟁력에는 기술력 자본력등 여러요소가 있겠지만 그런것들은 일조일석에
해결될수 없다. 마음먹기에 따라선 노사화합과 임금안정이라는 당장에
할수 있는 일부터라도 순순히 풀린다면 기업들은 한숨돌리고 경쟁에 임할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근로자의 희생위에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공정한 분배의 원리면 족하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경제를
위해서도,근로자의 꾸준한 소득향상을 위해서도,고용안정을 위해서도
유일한 선택이다.
남 노동부장관도 어려운 환경에 처한 경제를 살려나가기 위해서는
노사안정이 중요하다는 포부를 밝힌바 있다. 국제화 시대의 경쟁력
강화라는 가장 무거운 짐이 신임 노동부장관의 어깨에 걸려 있음을
주목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