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 출범 첫해인 금년 문학계는 이슈가 적었고 논쟁거리도 눈에 띄지
않아 조용했다. 민예총의 사단법인화 결정에 따라 민족문학작가회의도
제도권화의 길을 걸었고 그에 따라 예총, 문입협회와의 불협화음이 있었지만
서로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다. 작가 황석영씨가 귀국해 구속됐지만 구속
해야한다는 입장과 석방해야한다는 입장들이 극한 대결을 벌이지는 않았다.
92년을 풍미했던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은 시들해졌고 신세대작가들도
"영원한 제국"의 이인화씨를 제외하고는 별로 새로운 창작물을 내놓지
못했다.

기존 작가들도 연재물을 다시 묶어내는 경우는 많았지만 새로운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아직 작가들이 90년대적 삶에 관한 입장을
내놓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소설계의 침체를 설명했다.

누구나 쓴다는 창작대중화가 누구나 책을 내는 출판대중화로 변질되면서
유사소설류가 범람해 소설계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20대 청년이 늘어놓는
연애담과 참전용사의 전쟁체험기, 교사의 교단체험,버림받은 여인의 회고담
등 자신의 체험이 상상력과 구성의 여과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쓰여져
"소설"이라는 이름을 걸고 마구 출간됐다.

소설이 영화의 원작으로 팔리는 일이 잦아지고 원작료가 고액화되면서
일부 작가들이 영화화만을 염두에 둔 창작경향을 보여 영상문화에 문학이
종속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을 낳기도 했다.

근.현대사 국제관계 통일문제 등 인문.사회과학의 지식과 정보를 중심으로
한 교양소설들이 쏟아져나왔다. 분량도 최소 3,4권이상의 방대한 것이어서
이제 소설감상의 중심이 묘사와 인물 위주에서 구성과 줄거리 위주로 변화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영화화를 염두에 둔 글쓰기와 교양소설의 유행은 추리소설양식의 일반화와
더불어 순수소설과 대중소설의 벽이 무너지고 있다는 주장의 논거가 됐다.

역사소설류의 인기가 상반기를 정점으로 시들해지면서 교양소설류가
주도출판의위치를 점하려는 경향을 보였지만 판매와는 연결되지 않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입시제도가 바뀌면서 청소년층 문학인구가 늘
것으로 전망됐었지만 아직 초기인 탓인지 여전히 학생들은 문학서를 손에
넣지 않고 일부 출판사가 펴낸 다이제스트문학참고서에 눈을 돌렸다.

시단은 상당히 다양한 양상을 보였지만 여전히 서정시로의 복귀 이외에는
뚜렸한 새경향을 나타나지 않았다. 시의 대중화는 여전히 가속화돼 시인
들의 시집은 유력출판사의 시집번호에는 들어있지만 베스트셀러와는 거리가
멀었다. 국적불명의 익명시인이 쓴 연애시집이 여전히 청소년층의 선호를
받았다.

수필문학은 소설 자체가 에세이화, 신변잡기화 되는 추세에서 따로 문학
으로서의 위치를 제대로 지켜내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려가고 있다. 93년
문학계는 여전히 어려운 현실을 경험했다.

대중화 저질화를 부추김하는 상업주의적 경향에 문학은 몸살을 앓았다.
80년대말 세계사적 변혁을 초래한 이념의 붕괴가 여전히 "제3의 길
모색"이라는 당위를 주고 있지만 상업주의의 범람 속에 문학계는 90년대적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권영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