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등 안정기 제조업체인 금산산업의 한상리 사장(52)은 요즘 많이 후회
한다. 6~7년전만 해도 너무나 좋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다.

당시 한사장의 직업은 숙박업소 사장. 대구 앞산공원앞 일흥장여관 주인
이자 대형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사장이었다. 이들 업소외에도 그는 꾀 많은
부동산을 갖고있어서 남부러울게 없는 처지였다.

고급승용차를 몰고 인근 팔공CC에 가서 친구들과 골프를 친뒤 사우나에
들러 몸을 푸는등으로 소일했다. 계모임 회원들과 돈을 모아 침곡 군위등
시외로 나가 보신음식 및 보약을 구해 먹는데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지역
유지들과 동남아 여행을 하거나 기부금을 거둬 불우이웃 돕기도 하는등
참으로 여유있는 생활을 했었다.

이같은 느긋한 여유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은 그가 제조업에 참여키로
마음먹으면서부터. 지난 88년5월 경북 고령 쌍림농공단지에 있는 공장
부지를 매입하면서부터 곧장 고생길로 접어들었다.

한사장이 제조업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숙박업소를 차리기전 17년동안
경북도청과 대구시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한 경력과 한때 레슬링 국가대표
선수였던 경력이 상당히 작용했다.

그는"뭔가 나라를 위해 힘쏟을 일을 해보자는 의도에서 제조공장을 짓기로
마음먹었다"고 술회한다. 그러나 이때부터 그가 해온 오직 일관된 주요
업무는 여관에서 번 돈을 공장에다 갖다 붓는 일 뿐이었다.

공장건축 및 플랜트 도입등에 밑도끝도없이 돈이 들어갔다. 10억원이상이
들어가면서부터는 한푼 한푼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숙박업쪽에서
제조업쪽으로 가져다 "쳐넣은"자금은 총24억원정도. "이런 과정에서 여관과
식당에서 나온 현금으로 금산산업 직원들의 월급을 준 일도 있다"며 쓴웃음
을 짓는다.

돈이 계속 들어가는 것은 제조업을 하기로한 이상 애초부터 각오한 것
이지만 공장설립 절차가 계속 지연되는 데는 도저히 참을 길이 없었다.
부지를 매입하고 건축허가를 얻는데만 꼬박 2년이 걸렸다. 90년1월에야
겨우 건축허가를 취득한 것이다. 더욱이 공장설립을 완료하는데 걸린
시일은 총3년6개월10일.

한사장은 경북도청 건설과에 오래 근무하면서 포철단지조성에 참여한 경험
덕분에 단지조성 및 공장건설 분야에는 비교적 밝은 편이다. 하천법을 비롯
건축법등도 익히 알고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지정하고 지자체가 추진하는
농공단지에 공장을 설립하는데 이렇게 시일이 걸리는데는 분통이 터져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설비도입단계에서는 더 미칠 지경이었다. 일본 니토크사로부터 자동권선기
를 도입해 오고 선글로전기에서 플랜트를 들여오는 데 다시 1년이란 세월을
보내야 했다. 통관지연을 해결키 위해 관계 공무원들과 싸움께나 벌였다.

91년11월말 드디어 공장설립을 완료하고 본격 생산에 들어갔다.
금산형광등 안정기는 전자식보다 노이즈가 적은데다 제품값도 싸서 수요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영광도 잠시뿐,가동
3개월만에 신축공장이 화마에 휩싸인 것이다. 옆공장에서 포장용으로 쓰기
위해 가져다놓은 부직포에 담배불이 옮겨 붙어 순식간에 설비를 불태우고
말았다.

한사장은 사나이대장부로 태어나 이때 처음으로 쓴눈물을 흘렸다.
다행스러운 것은 화재가나고부터 재고가 달리자 주문이 2배로 더늘어나기
시작했다. 화재를 당하고나면 장사가 더 잘된다는 미신이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현재 안정기를 월간 60만개이상 생산하는 건평 1천평규모의 이 회사 공장
안에 들어서면 완전자동화된 기계들이 끊임없이 굉음을 내며 돌아간다.

지난 연초에는 독일 오스람사에서 찾아와 공장을 둘러본뒤 설비 및 품질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며 첨단조명기구인 메탈하일라이드램프용 안정기를 공급
해줄 것을 요청했다. 내수주문이 많아 수출은 자제한다.

"납품처나 금융기관사람들에게 굽씬거려야하는 처지를 생각하면 제조업을
시작한 것이 여전히 후회가 되지만 공장안에 들어가 자동화 컨베이어에
밀려가는 제품을 쳐다보면 금새 기분이 풀린다"고 토로한다. 제조업에
손댄 "바보스러움"이 이때만큼은 자랑스러워지기도 한다고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