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와 금리자유화 2단계조치가 시행된뒤 예상과는 달리 시중금리가
내림세를 보이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풍부한 시중
자금사정이 중소기업에는 그림의 떡이라는 푸념과 함께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일부 한계기업의 도산사태마저 우려되고 있다.

시중자금사정이 좋아진것은 확실하다. 대표적인 실세금리인 회사채유통
수익률이 7월말에는 13.25%였으나 금융실명제 시행이후 1%포인트쯤 올랐
다가 금리자유화 2단계조치가 시행된 11월초에 이미 13.15%로 내렸다. 그
뒤에도 내림세가 계속되어 24일 현재 12.40%를 기록했으며 별다른 변화가
없는한 올해말까지 12%이하로 낮아지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양도성예금
증서(CD)금리도 8월말에는 16.04%까지 올랐으나 지금은 12.55%를 기록하고
있으며 콜금리도 11.20%로 계속 11%선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금리안정세가 계속되자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좋은 은행신탁계정및
단자사에 이달들어서만 벌써 각각 1조7,900억원,1조6,000억원의 돈이 몰려
들었다. 아울러 외국인의 주식투자자금이 올해에만 50억달러나 유입된 것도
금융실명제 시행이후의 느슨한 통화관리와 함께 시중 자금사정이 풍부해진
큰 요인이다.

그렇다면 시중금리가 떨어지고 자금사정에 여유가 있는 것으로 금융시장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말할수 있는가. 우리의 대답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금융기관의 고유업무인 금융중개기능(financial intermediation)이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금융이란 s 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의 돈을 필요한 사람에게 꿔주는 것"인데 자금여유가 있는 대기업은
이른바 "재테크"에 바쁜데 비해 정작 돈을 필요로 하는 서민이나 중소기업
들은 돈을 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 10월중 수도권의 부도업체수가 383개로 올해들어
최고를 기록했다. 물론 신용상태가 좋지못한 중소기업에 대출을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고도 할수 있으나 문제는 돈이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지 못한다는
점으로서 신용에 문제가 있다면 제도적인 보완이 있어야 할것이다. 수많은
공장을 돌릴 운영자금이 없어 회사가 쓰러지고 집없는 서민들이 내집마련을
위한 돈을 원하는 판에 갈곳을 못찾은 뭉칫돈이 높은 금리를 찾아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금융당국은 저당채권유동화
제도(mortgage)의 도입을 서두르고 신용보증기금의 기능을 강화시켜 실물
경제와 금융시장의 연결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

둘째는 금리자유화를 포함한 금융자율화가 아직정착되지 못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중금리가 계속 내림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말 그대로 금융시장에서의 자금수급동향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냐는 점
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 않다.

실세금리를 대표한다는 회사채 유통수익률만 봐도 기채조정협의회를 통해
채권발행물량을 조정한 결과 정부가 의도한 대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같은 규제가 없어도 유통수익률이 떨어지리라고는 장담할수 없다. 단자사
의 매출어음수익률이나 투신사의 자금운용,나아가 은행권의 여수신 금리
조정에 이르기까지 아직은 재무부의 입김이 너무 강하다고 할수 있다.

물론 정부의 조정과 선도에 따라 질서있게 금융자율화를 추진하는 것은
필요하나 문제는 우리의 금융기관들이 아직도 구태의연한 자세를 버리지
못하고 경쟁과 자기혁신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금융당국
은 금융시장의 효율화를 위해 좀더 과감한 자극과 개혁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셋째로 금융시장의 개방과 국제화가 급진전되기 전에 서둘러 대비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노력이 미흡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예로
이달들어 1조237억원의 통화채가 만기도래했으나 신규발행은 5,127억원에
그쳐 5,110억원어치가 현금상환된 것을 들수 있다.

한은입장에서는 최근 총통화(M2)증가율이 18%대로 떨어지고 있는데 굳이
이자를 지급하면서 통화채를 발행할 필요가 있느냐고 판단할수 있다. 아울러
과거처럼 통화채를 강제배정하는 대신 경쟁입찰방식을 택한 탓도 있다.
그러나 금융실명제이후 풀린 돈을 고려할때 총통화증가율 18%는 여전히
높다고 할수 있으며 내년에는 주식투자를 위한 외화유입액이 120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판에 이같은 자세는 너무 안이하다고 본다. 특히
금리자유화가 진전될수록 공개시장조작을 포함한 간접적인 통화관리방식이
중요해지기 때문에 금융당국은 좀더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시중자금사정이 여유있는 가운데 돈을 필요로 하는 실수요자는 돈을
구하기 어려운 부익부 빈익빈현상은 국민경제에 전혀 바람직하지 않으며
하루빨리 이를 시정할수 있는 대응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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