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0년 4.19로 장면정부가 출범한직후 미국에서 귀국,한은조사부
제1통계조사과에서 국내경제성장을 추계하는 일을 시작했다.

바로 다음해 5.16군사쿠데타가 터졌는데 당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61년5월16일 새벽4시께였다고 생각된다. 옆에서 잠자던 아내가 총소리가
계속 난다며 나를 깨웠다. 얼떨떨한 심정으로 귀를 귀울였다. 정말
총성이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그때 직감적으로 "쿠테타구나"라고 생각했다.

2차대전후 남미 동남아중에서 군사쿠데타가 연이어 발생,우리나라에서도
투데타를 일으킬 군인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평소에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4.19혁명이후의 민주당내부갈등과 장면정부시대의 혼란상은
군사쿠데타의 가능성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5.16의 파장은 즉각 한은에도 몰아닥쳤다. 장면정권이 들어선후
부총재에서 승진됐던 전예용총재가 쿠데타당일부터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더니 5월30일 유창순부총재가 총재로 취임했다.

정부각부처에 군인연락관이 파견되고 공직자 숙정이 시작됐다.
한국은행직원도 숙정과 관련,상당수가 퇴직했다.

5월28일에는 부정축재자 26명을 구속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구속자명단에는 이병철(일본체류중이어서 실제로는 구속되지 않았음)
이정림 정재호씨등 그후 한국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한 경제인 11명과
관리출신 10명, 군인5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혁명위원회가 내세운 "빈곤과 기아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해결하고 국가자립경제를 완성한다"는 혁명공약을 위해 구속된 기업인들은
7월14일 출감하고 7월17일에는 이들이 주축이 되어 경제재건촉진회가
구성되었다.

5.16 1개월후인 6월중순께 나는 조사부장실로 호출돼가 중대임무를
부여받았다. 국가재건최고회의 회장명의의 유창순총재앞공문을 손에
받아들었는데 62년부터 시작되는 제1차5개년계획을 1주일내에 작성해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1주일내에 어떻게 5개년계획을 작성하느냐고 반문했으나
최고회의에서 공문으로 내려온 명령인데 누가 이 공문을 바꿀수 있느냐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5개년 계획은 국민소득추계담당인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명령이었다.

조사부장실에서 5개년계획 작성지침에 관한 논의를 할때 나는 경제성장률
목표를 6.5%로 설정해 계획을 작성해야 한다고 우겼다. 그러나 조사부내
부장이하 간부들이 과거의 한국경제성장추세에 비추어 5.5%의 성장계획을
갖고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이를 따랐다.

나는 국민소득계행원인 안상국 전영수(주택은행장역임)
이경식(현경제기획원장관) 이웅수(교통부차관역임) 임해림(금융연수원
부원장역임) 이상근(한미은행장역임)씨및 여직원 몇사람을 독려해서 수동식
계산기를 돌려가며 통행금지 직전까지 작업을 하고,아침에는 1시간 먼저
출근해서 경제개발 5개년계획작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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