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 맨해턴 55번가에 위치한 미주선경빌딩. 선경아메리카(SKA)
미주경영기획실(OCMP)등 미국현지법인들이 입주해있는 이빌딩 19층
회의실에서 최종현회장은 지난9일(현지시간)색다른 임원회의를 주재했다.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대응책을 논의한 이날 회의는 첫째 참석임원
대부분이 미국인이거나 현지출생의 재미교포라는 사실이 이채로웠고
두번째로 회의자체가 영어로 진행됐다는 점이 특이했다.

글로벌리제이션의 전제조건인 현지화의 한단면을 보여준 셈인데 OCMP와
SKA의 인적구성을 보면 현지화는 더욱 실감난다. OCMP의 직원은 모두
20명. 이중 한국에서 파견된 사람은 김영만사장 한사람 뿐이고 나머지는
IBM등 굴지의 기업에서 임원을 지낸 경력이 있거나 하버드 스탠포드
컬럼비아등 미국유수의 대학을 졸업한 교포2세들이다. 직원이 2백명인
SKA는 사장인 제임스 디미트리우스씨부터가 미국인이다. 재미교포를
포함한 현지인은 1백80명정도.

김영만OCMP사장은 이같은 인적구성의 배경을 "글로벌리제이션시대에는
세계각국이 개별시장으로 존재하지 않고 하나의 시장으로 용해되어
유기적인 관계를 갖게된다. 따라서 해외법인의 현지화없이는
글로벌경영전략이 불가능하며 현지화는 현지인고용확대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현지화는 수출확대차원의 현지생산과는 의미가 다르다. 해외현지법인이
그나라의 국내기업이 되는 것을 말하며 이는 구성원들이 현지인과 다름없는
언어를 구사하고 현지인과 같은 의식구조를 갖고있어야 가능하다. 선경이
미국인인 디미트리우스씨를 SKA의 사장에 앉힌 것이나 도요타자동차가
미국소비자들의 기호를 충실히 반영키위해 승용차디자인을 미국현지에서
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미국 남서부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에 있는 미국국제경영대학원(일명
선더버드)이 최근 하버드경영대학원 못지않게 각광을 받는 것도
글로벌리제이션시대의 도래와 관련이 있다. 선더버드는 실무중심의 교육과
외국어를 하드트레이닝시키기로 유명한 곳. 로이 허거버대학원장은
"글로벌리제이션시대의 기업인은 비즈니스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정치
언어 종교등 다양한 환경에 적응할 수있어야한다. 모국어외에
2개국어이상의 외국어를 통달해야 학위를 주고 학교내에 국제적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밝힌다. 선더버드출신이 새롭게
각광을 받고 AT&T등 세계적 기업들이 기부금출연등을 통해 선더버드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려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라는 설명이다.

그러면 글로벌리제이션 전략은 어떻게 짜야하나. 뉴욕시립대의 쓰루미
요시교수는"먼저 기업이 자신들의 핵심기술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이를
무기로 글로벌한 조직을 편성하고 다음으로 약점을 점검해 외국기업과의
제휴등 보완책을 세워야한다"고 지적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품질로
한때 세계를 휩쓴 IBM이나 강력한 시장침투능력을 바탕으로 각국시장을
개척한 코카콜라처럼 자신들의 강점을 살릴수있는 전락을 펴야한다는
얘기다. (쓰루미교수는 호소카와 일본총리의 절친한 친구로서
개인적으로는 일본의 경제정책자문에도 응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진
경제블록문제 전문가이다)
따라서 "뚜렷한 무기도 없이 단순히 국내시장에서의 어려움이나
시장진입장벽을 피할 목적으로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은 앞으로 견디기 힘들
것"으로 쓰루미교수는 보고있다. 그는 이런 시각에 근거,"현재 2천여개의
일본기업이 미국에 진출해있으나 글로벌리제이션시대가 본격화되면 이중
3분의2는 도태될것"이라고 단언한다.

과거에는 해외투자가 무역의 뒤를 이었다. 그러나
글로벌리제이션시대에는 해외현지생산을 통한 제3국수출이 많기 때문에
투자가 무역을 선행한다. 현지투자가 곧 해당국의 기업이 되는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폴라로이드사의 조지 해밀턴전무는
"글로컬리제이션"(글로벌리제이션+로컬리제이션)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무역에 앞선 투자에 성공,글로벌리제이션을 이룩하기위해서는
세계단일시장을 겨냥한 경영전략과 함께 도처의 경제요소들을 효율적으로
엮어내는 지역별 전문화내지는 현지화,즉 로컬리제이션을 병행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선 "각 해외법인이 현지사정에 맞는 제품을 개발
생산할수있도록 현지법인에 본사의 기능을 부여해야한다"고 지적한다.

선경그룹 OCMP의 로널드 올슨이사도 비슷한 맥락에서 현지화를 바탕으로한
지역시장에의 적절한 대응, 재정 금융분야에서의 첨단경영기법도입,
다른기업과의 제휴, 국제적 정보체계구축등을 글로벌리제이션의
핵심전략으로 꼽았다.

글로벌리제이션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도요타 GTE 미쓰비시 플레밍
도이치은행등 세계일류기업들은 이미 해외법인의 현지화단계를 지나
현지법인의 본사화단계로 들어섰다. 그들은 EC통합이나 NAFTA체결등도
단순한 블록화가 아니라 세계시장의 통합으로 가는 중간단계로 인식,통합된
지역시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리제이션전락을 짜고있다.

이에비해 국내기업들은 일부 글로벌경영체제를 갖추어가는곳도 있으나
대부분 글로벌리제이션에 대한 대비를 하지않고 있다. 정부정책 또한
이같은 국제조류의 변화보다 국내문제에 초점이 모아져있다.
"한국기업들도 글로벌리제이션전략에 입각해 해외진출등 경영계획을
결정하지않고 국내에 집착하거나 저임의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나가는
형태가 되어서는 곤란한 상황을 맞게될 것"이라는 쓰루미교수의 말을
되새겨 보아야한다. 지금 일본기업들은 "미국에 진출한 일기업중 3분의2가
글로벌리제이션시대에 적응치못하고 도태될것"이라는 그의 진단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뉴욕=이희주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