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노인 집안에 경사가 났다. 대를 이어 나갈 노인의 손자 결혼식이
다가온 것이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을 넓은 앞뜰에 총집합시켰다.

노인은 "모처럼의 경사에 큰 잔치를 벌여야겠다"는 뜻을 전하고
동물식구들의 의견을 물었다. 모두들 대찬성이었다. "이런 기쁜 일이
두번 다시 있겠느냐"고 환호를 올렸다.

만장일치의 찬성을 얻은 진노인은 기쁜마음으로 바로 앞자리에 목을 길게
뽑아든 오리를 내려다보면서 "그럼 오리의 목을 비틀도록 하자"고
제의한다. 깜짝 놀란 오리는 "무슨 농담이십니까. 저는 매일처럼 알을
낳아 가족들의 영양보충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습니다. 하는 일 없이
놀고 먹는 수탉이 있지 않습니까"면서 옆자리로 빠져 나간다. 수탉은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이른 새벽에 밝아오는 아침을 전가족에게
알리는 신성한 임무를 다하는 저올시다"수탉은 볏을 우뚝 세우면서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양을 쳐다본다. 양은 기겁을 하면서 "저의 털로 가족
전원이 따뜻한 겨울을 지낸다는 것쯤은 잊지 않으시겠지요"하면서 울타리
곁에서 서성대는 개를 쳐다본다. "밤중에 도둑과 여우떼들로 부터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는 저의 은공을 잊지는 않았겠지요"라면서 개는 덩치큰 말을
바라본다. 말은 큰 눈을 부릅뜨며 "가족들이 먼곳으로 떠날 때에 누구의
등이 더 편한지는 명백하지 않습니까. 저의 등과 소의 등은 비교할수 없는
일이지요"한다. 소는 능청스럽게 한마디 한다. "제가 없어지면 우리집
농사는 누가 짓지요"

잔치에는 이구동성으로 찬성했지만 시선이 자신에게 오면 하나같이 도망갈
구실을 찾는다는 중국의 한 민화줄거리이다. 총론찬성 각론 "우물우물"의
우리 청치권을 가장 적절히 비유한 이솝이야기같은 느낌이다.

금융실명제 실시가 김대통령에 의해 전격 발표되었을 때 우리의 정치권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재빨리 소집된 국회는 대통령의 실명제 실시를
위한 긴급명령 처리에 99. 7%라는 압도적인 절대다수로 찬성했다.

각논부분의 이의를 가슴속에 묻어둔채 말이다. 실명제 실시이후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때아닌 과소비풍조가 기승을 떨치고 있다는 소식이다.

고급 자동차,수입고가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강남의 유흥지가 흥청거리기
시작했으며 최고급 호텔들의 연말파티장 예약이 오래전에 끝났다한다.

"저축했다고 혼날 바에야 쓰고 마시고 보자"는 심사와 "지하경제를 없애고
투명사회를 만들자"는 실명제 당초의 취지는 전혀 별개의 것이었어야겠으나
무언가 잘못 돌아가는 것 같다는 여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