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 대학을 졸업하는 정모씨(26.K대 철학과4)는 하루 1갑씩 피우던
흡연량이 요즘 두배로 늘어났다.

밤이면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어렵사리 잠이 들어도 악몽에 깨어나기
일쑤이다.

사람들 만나는 것도 귀찮아 학교에서 집,집에서 학교만 시계추 처럼
왔다갔다한다.

이러다 대인기피증이라도 걸리는 것이 아닌가 덜컥 걱정이 될 정도다.

해마다 취업철이면 각 대학의 학생 상담실에는 이같은 취업스트레스를
호소해 오는 졸업반 학생들이 부쩍 늘어난다.

졸업반 학생 거의 대부분이 취업에 대한 강박관념에 쫓기고 있다것이
담당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J대학교 학생생활 상담소는 얼마전 소위 "대4병"이라는 것을 수치로
확인했다.

취업을 앞둔 졸업반학생 40명의 인성검사 진단내용를 표본분석해 본 결과
안정성과 우월성(자신감)의 평균수치가 각각 56과 54%를 기록했다.

비교적 안정되고 자신감이 있는 정상인의 수치가 75%.

40%이하로 내려가면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것으로 볼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대학의 졸업반 학생들은 정서적으로 심한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30~10%사이일때 정상, 75%가 넘어가면 심각한 상태라는 우울증과 불안증도
각각 48%를 나타냈다.

정상보다는 비정상에 더 가까운 수치이다.

인문과 상경계열 학생들의 인성검사 수치를 비교해 보면 이같은 결과가
취업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는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상대적으로 일자리 구하기가 쉬운 상경계 학생들의 안정성 평균 수치는
64.8%,입사시험에 응시할 기회조차 제한된다는 인문계 학생들은 49.3%.

자신감 역시 상경계학생은 59.5%,인문계학생은 49.4%로 10%포인트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이 대학 학생상담실의 최철용씨는 "취업난이 극심해 지면서 학생들의
불안감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며 "학생들의 불안감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취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정도까지 와있는 것같다"고 분석했다.

S대학 학생생활 상담실에는 최근들어 1주일 상담시간이 보통 80시간,많을
때는 1백시간이 넘어갈 정도로 상담자들이 몰리고 있다.

학생마다 상담시간이 달라 정확히 사람수로 따져 볼 수는 없지만 대략
80~1백명은 다녀가는 셈이다.

이 가운데 직접적으로 취업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경우는 대략 10%정도.

그러나 실제 상담을 하다보면 거의 대부분이 사회진출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고 이 대학 학생상담실의 최해림씨는 설명한다.

"예전에는 취업스트레스를 호소해 오는 학생 대부분이 4학년이었어요.
그러나 최근에는 2,3학년학생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심지어 1학년들
중에도 취업걱정을 하는 학생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최씨는 취업스트레스의 피해가 저학년에게로 점차 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정신과 의사를 찾는 환자의 발길도 잦아진다.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는 올 가을들어 사회진출에 대학 강박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두배가량 늘었다.

이 병원 정신과의 김찬형씨는 "특히 취업에 대한 강박장애 환자는 서울
보다 지방이 많다"며 "지방에 소재한 C의료원에 재직했던 지난 3년동안
취업철이면 사회진출을 앞둔 환자들이 꽤 찾아왔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현재 분석이 진행중일뿐 학문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라고 전제
하면서 "30대보다는 20대의 정신질환 발병률이 더 높은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적절한 좌절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20대들은 비교적 곱게 자라났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
부딪쳤을 때 감당할 능력이 부족한 편이지요" 김박사는 요즘 젊은이들이
쉽게 정서적불안 상태에 빠지는 원인을 이렇게 분석하고 "끊임없는 경쟁의
연속상태로 몰고 가는 현대산업사회의 구조도 큰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학교에서 하라는 만큼 공부하고, 부모가 정해준 학과에 진학하는 "타율"
의 홍수속에서 성장해온 젊은이들.

도대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그일을 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겨를도 없이 대학문을 나서는 젊은이들이
혼란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원자는 몰려들어도 정작 뽑을 만한 사람은 없다는 기업의 인사담당자들
의 푸념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삐뚤어진 교육열,부실한 대학교육,일류만 뽑겠다는 기업의 단시안적인
이기심등이 치열한 취업전쟁속에서 젊은이들을 더욱 병들게 하고 있다.

<노혜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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