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래의 난"을 반봉건농민전쟁이란 시각에서 재조명한 대하역사소설이
출간돼 주목을 끌고있다.

중견작가 최남백씨 (60.본명 최근덕.성균관대 유학과 교수)가 최근 펴낸
''반역''(전7권.한길사간)은 90년대 들어 쏟아져나온 야담.전기류들과 품격을
달리하는 본격 역사소설이다.

당시의 시대정신을 배경으로 치말한 고증을 통해 의.식.주는 믈론 말투
생활양식등 당시 풍속을 여실히 재현하고 있다.

"반역"은 80년 정월부터 86년 12월까지 만7년간 "신동아"에 "홍총각"이란
제목으로 연재됐다. 원고지 9천장의 방대한 분량. "반역"이란 원제를
쓰지 못했던 5공시절과 그 시작과 끝을 같이 했던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최씨는 "반역"에서 임꺽정,장길산의 맥을 잇는 민중영웅 홍이팔이란
인물을 발굴해 그의 짧았던 삶의 역정을 그리고있다.

1811년 홍경래의 난이 진압된후 체포돼 서소문밖에서 참수된 홍이팔은
천애고아로 자란 잡초같은 인물이다. 황소의 뿔을 맨손으로 잡아뽑는 힘을
지닌 저돌적인 그는 김창시를 만나 홍경래 우군칙의 수하에 들어갔다.

농민반란군의 선두에는 항상 그가 있었고 그는 총각장군으로 조선팔도에
용맹을 떨쳤다.

"반역"은 홍이팔의 개인사를 기본뼈대로 평안도지방 농민봉기의 원인과
진행과정 그리고 그 좌절의 사연을 담고 있다. 당시 평안도 지역은
정치.경제적으로 극심하게 소외된 지역이었다. 양반들의 과거를 통한
중앙진출도 거의 봉쇄돼 있었을 뿐만 아니라 대청무역과 광산개발로 돈을
번 신흥지주의 등장으로 양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홍경래 우군칙등
지도층은 광산노동자 빈농 유민들을 규합,혁명을 꾀하나 6개월여만에
정주성에서 진압되고 만다.

최씨는 "조선왕조실록"과 "진중일기""서정일기"등 당시문헌을 참조,반란군
관군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중립적인 시각에서 그려나가고 있다.
"반역"이 영웅주의에 빠지지 않고 리얼리티를 얻는 것도 그 때문이다.

"홍경래의 실패는 결국 추상적인 구호탓이었습니다. 도참설에 바탕해
스스로 홍도령,진인이라고 칭하는등 불만세력을 하나로 규합하기에는
역부족이었지요. 오히려 "세상을 완전히 뒤엎어 버리자"는 원초적인
구호를 내걸고 피로 호소했던 홍이팔이 더 호소력이 있었지요"

결국 의적에 불과한 임꺽정 장길산등에 비해 신분타파의 인식을 갖고
혁명을 꾀했던 홍총각 이팔이 민중영웅의 위치를 차지해야한다는 것이
최씨의 생각이다. "평안도 반봉건농민전쟁"은 동학농민전쟁에 비해 80여년
앞섰을뿐만 아니라 종교적 색채를 띠었던 동학과 달리 신분타파와 혁명
이라는 근대적 의식의 발아라는 측면을 지님으로써 더욱 역사적 의의가
있는 사건이라는 것이 그의 역사인식이다.

최씨는 56년 장편소설 "지상의 성좌"를 대구 매일신문에 연재하며 창작
활동을 시작했고 59년 "현대문학"에 단편 "어느 자세"가 추천돼 등단했다.
장편"여로" "흙불" "식민지" "화우도" "호객"등이 대표작이다. 유학계의
중진으로 현재 유교학회장 율곡학회장을 맡고 있다.

18세기 영.정조시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한 지방의 성쇠사를 통해 우리
나라의 근.현대사를 재조명하는 2만장 분량의 대하소설 "낙동강"을 구상중
이다.

<권영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