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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15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태평양그룹의 모태는 화장품이다.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개성에서 성장한 서성환회장은 해방의 감격이
채 가시지 않은 1945년 9월5일 서울 중구 남창동에 태평양화학공업사
간판을 올렸다. 바다처럼 큰 회사로 키우겠다는 야망이 담긴 이름이다.
당시의 화장품시장은 그동안 판을 치던 일제화장품이 해방과 함께 자취
를 감추고 수요만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관할 관서에 등록만 하면 되는
때여서 간판을 올리기는 쉬웠지만 문제는 원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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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저곳을 뛰어다닌 끝에 파라핀 스테아린산등의 원료를 구한 서성환은
형과함께 메로디라는 이름으로 크림 포마드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시제품 포마드는 포장이 허술했음에도 당시로서는 품질이 제일 나아
나오기가 무섭게 잘 팔렸다.

25세되던 49년 그는 형의 그늘을 떠나 중구 회현동에서 독자적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훗날 형 건환은 서성환의 대외업무를 맡아주게 된다.

그후 서성환은 영등포구 당산동의 화장품공장에서 일본인이 쓰다가
남기고간 원료를 확보,ABC라는 이름으로 식물성 포마드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광물성 포마드가 주류를 이루던때 그는 식물성 포마드에 착안했던 것이다.
그것도 종전과 다른 특수방식을 고안했다. 다름아닌 냉각방식.

같은 식물성 포마드라도 냉각을 잘 하면 광택이 많이 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고급 이미지를 주기위해 라벨 10만장을 일본에서 주문해
사용하기도 했다. 전국의 판매상들이 다투어 공장으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대금을 미리 맡기며 물건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30명 정도였던 종업원들이 밤을 새워 만들어 냈지만 그래도 미처 물건을
댈수없었다.

욱일승천하던 태평양화학의 기세는 6.25의 발발로 잠시 주춤했으나
부산피란시절에도 화장품제조는 계속됐다.

환도후에 사업은 더욱 번창,56년8월에는 후암동공장이 비좁아 현재의 본사
사옥이 있는 용산구 한강로2가로 공장을 옮겼다.

무려 1백여개가 넘는 화장품제조업체가 난립,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으나 서성환은 58년 분을 곱게 만드는 에어스펀기를 도입,품질경쟁에서
선두에 서게된다.

62년 평가금액으로 1백60만3천8백원(당시 쌀 1가마 1천원)을 주고 구입한
이 기계는 당시 동양최대의 화장품생산설비였다.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무언가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서성환은
다시 59년 프랑스 코티사와 기술제휴,코티 분백분을 생산케된다.

당시 미군부대 PX를 통해서 흘러나오던 코티분은 여성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화장품이었다.

제품가격은 3백30원. 쌀 한말반과 맞먹는 가격이었지만 엄청난 히트를
기록해 다쓴 용기를 수거해 만든 유사품까지 범람했고 이를 막기위해
깡통포장을 하기도 했다.

코티분으로 국내 화장품시장을 석권하게된 태평양화학에 5.16은 결정적
으로 도약의 계기가 됐다.

정부에서 특정외래품판매금지법을 제정하여 밀수품이나 PX품 추방에
강력한 행정단속을 실시한 덕분에 국내 화장품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된다.

63년에는 대지 8천여평에 건평 1천7백평규모로 당시 국내최대의 자동화
공장을 설립하고 미용사원제도를 도입,다음해부터는 방문판매를 실시한다.

그이후 70년대말까지 한시대를 풍미했던 방문판매제도는 국내
화장품산업사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이전까지 화장품은 주로 도매상들을 통해 시판되고 있었는데 이들의
입김이 갈수록 거세져 결제지연과 담합 판매거부등 업체에 대한 압력이
심했다.

방판은 이런 유통업자들의 횡포를 해결한 유통혁명이었다.

공장신축과 대규모 방판영업망 조직으로 자금압박을 받던 태평양에 때마침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왔다.

67년에 정부가 화장품업계를 적극 육성키로 하고 태평양화학을 모범육성
기업으로 지정, 내자 1억3천만원, 외자 13만5천달러를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해준 것이다.

태평양화학은 71년께에는 국내화장품시장의 70%이상을 점유하는 비약적인
성장을 통해 가정용품과 건강식품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해나갔고 태평양개발
장원산업 태평양제약 태평양생명보험등을 잇달아 설립, 16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변모한다. 태평양화학공업사는 87년 상호를 태평양화학
주식회사로 변경한데 이어 93년3월12일 주식회사태평양으로 바꾸었다.

태평양은 지난 9월 창업 48주년을 맞아 21세기에는 세계 10대 화장품회사
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무한책임주의를 선언,대대적인 변신을
꾀하고 있다.

<고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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