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난아기 주먹만한 "메리나 배지"가 미전역을 석권한 일이 있었다.
20여년전의 일이다. 배지의 표면에는 "메리나는 그리스인"이라는 짧은
문장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멜리나 메르쿠리. 그녀는 "일요일은 참으세요"란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출연,일약 세계적인 여배우로 주목을 받았다. 메르쿠리는 그무렵 뉴욕의
무대에서 "일요일은."의 뮤지컬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그녀의 열연에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열광적인 환호속에는 그녀의 연기력에
대한 것뿐 아니라 다른 또하나의 다른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메르쿠리는 당시의 그리스군사정권과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지금의 그리스는 지옥과 다름이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발상지에
군사독재가 권력을 독점,온 국민을 쇠사슬로 묶어두고 있습니다"라고
TV등에 출연,호소했다. 군정측은 "메르쿠리는 그리스국민의 적"이라고
규정,그녀의 국적을 박탈했다. 모국의 시민권을 빼앗긴 그녀는 "나는
그리스인으로 태어나 그리스인으로 죽을것이지만 군사독재자들은
파시스트로 태어나 파시스트로 죽을것"이라고 주장,군사정부에 대항했다.

미전역에 멜리나 지원배지는 선풍을 일으켰고 일반시민들이 이 배지를
가슴에 달고 다님으로써 그녀의 투쟁에 힘을 모아주었다.

군사정권이 무너지자 한때 "비국민"으로 몰렸던 투사메르쿠리는
국민들로부터 "영웅"대접을 받으며 귀국했다.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그가 속했던 사회당이 집권하자 문화과학부장관에 취임했다.

이번 주초에 있었던 그리스 총선거에서 사회당이 압승을 거둠에 따라 실권
3년반만에 권좌를 되찾을 모양이다. 냉전구조의 종결과 함께 사회주의
정당들의 퇴조무드속에서 승리를 쟁취했다는 사실이 유난히 주목을 끈다.
다만 그리스사회당의 이번 승리는 사회당의 선거전략보다 집권보수당
(신민주당)의 실정에 더큰 원인이 있다는 해설도 소개되고 있다. 현정부의
지나친 긴축 경제정책과 과도한 "고통분담"요구가 경제의 활력을 죽여
버린데다 파판드레우사회당당수에대한 무리한 "조작"재판이 정권교체의
붙씨가가 되었다는 뒷얘기다. 우리 주변에서도 요즘 흔히 듣는 소리들
이다. 짐꾸러미속 어디엔가 녹슬어 있을 멜리나 배지나 찾아봐야 할 모양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