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의 유학자였던 증자가 노나라 시골에서 다 떨어진 옷을
걸치고 농사를 짓고 있을 때의 일이다. 노나라 임금이 이 소문을 듣고
증자에게 한 고을을 떼어 주는 선물을 내렸다. 그러나 증자는 그것을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그때 사람들은 "그대가 원한 것이 아니고 노나라 임금이 자기 마음에서
우러나 주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굳이 사양하느냐"면서 증자에게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증자는 "듣자니 남의 것을 받는 자는 항상 남을 두려워 하게
마련이고 남에게 물건을 주는 자는 항상 남에게 교만하게 마련이다.
임금이 나에게 땅을 주기만 하고 교만을 부리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로서야
어찌 두려운 마음이 없겠는가"라고 대답하면서 그것을 끝내 물리쳤다.

"공자가어"에 나오는 이 이야기처럼 너무 지나친 선물은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부담감만 안겨 주어 그 본래의 의미를 해친다. 중요한 것은
선물의 값에 있지 않고 정감어린 마음이 깃들여야 한다. 아무리 값진
선물일지라도 보내는 사람의 정성이 배어있지 않는한 하잘것 없이 초라한
것이 되고만다. 그러나 아무리 사소한 선물일지라도 정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라면 그 진가는 어떤것보다 크다.

생활이 어려웠던 옛날만 하더라도 정성과 정이 깃들인 선물이 오갔다.
농부는 땀을 흘려 가꾼 곡식을,어부는 망망대해에서 모진 파도와 싸우면서
잡은 바닷고기를,또 시인이나 화가는 혼을 기울인 시나 그림을 선물로
보내던 시절에 정감을 느끼게 된다.

급속한 경제발전과 더불어 상품화된 선물이 다양화되고 고급화되면서
정성과 정이 담긴 선물은 추억의 장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70년대를 거쳐
생활의 여유가 생긴 80년대에 들어오면서 고가제품만이 선물이라는 의식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었다. 심지어 선물의 한계를 넘어선 뇌물성 품목이
나와 불티나게 팔리기까지 했다. "선물에는 바위도 깨어진다"는
세르반테스의 말을 연상케하는 선물문화의 타락현상이었다고나 할까.

올해도 추석을 앞두고 백화점매장들에는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으나 중저가품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물론 사정바람과
경기하강의 탓도 있겠으나 선물의 본령으로 되돌아가는 풍조의 시발이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