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나무잎새로부터 온다. 봄은 메마른 앙상한 가지에 움을 틔워
연록색의 모습을 드러내고 여름은 짙푸는 무성한 잎새로 서늘한 그늘을
드리운다. 가을은 불덩이 같이 새빨간 단풍으로 눈부신 장관을 연출해
내고 겨울은 앙상한 가지를 눈꽃으로 장식한다. 이러한 나무잎새의 바뀜이
계절의 변화를 가슴에 와 닿게 한다.

올해도 어느덧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강원도지방의 높은 산마루에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중부는
10월중순,남부는 10월하순께 절정를 이루어 온 산들이 붉은 물결로
뒤덮이게 될것이라고 한다.

이 무렵에 단풍으로 물든 산계곡과 명승지를 찾아 단풍놀이에 나서는
습속이 옛날부터 있었다. 음력9월9일인 중구절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가릴것 없이 국화로 만든 꽃전을 싸들고 각기 떼를 지어서 하루를 즐긴다.
문인들은 시를 짓고 풍월을 읊으면서 술자리의 흥을 돋우었다.

"흰 구름 푸른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추상에 물든 단풍 봄꽃도곤 더
좋아라/천공이 나를 위하여 뫼빛을 꾸며 내도다"
가을은 조선조 영조때의 문인 김천택이 읊은 이 시조의 내용처럼 가장
눈부신 계절이다. 서양 사람들에게도 가을을 완상하는 감흥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영국의 시인 J 던이 "가을"이라는 시에서 묘사한 가을은
사계절중 제왕이다. "나는 가을의 용모보다 더 우아한 봄의 아름다움과
여름의 아름다움을 본 일이 없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가을은 쇠락 죽움 애상의 상징으로도 우리 가슴속에
자리해 있다. 서리와 찬바람에 어느 사이엔가 누렇게 말라 떨어진뒤
땅위를 마구 굴러 다니는 나무잎새,생명의 마지막을 애소하는 듯한 벌레의
울음소리가 영욕으로 얼룩진 삶과 세월의 덧없음을 느끼게 하고 추풍이나
낙엽과 같은 가을에 관련된 낱말들마저도 슬픈 감정을 일으키게 한다.

화사한 단풍의 남하소식과 더불어 무르익어갈 조락의 계절 마루턱에서
온갖 세진에 찌든 자신을 되돌아 보고 우아한 삶의 자세를 가다듬는 명상의
가을이 되었으면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주변만을 질타하고 비난하고
비판하는 편협의 울을 벗어나 스스로를 반성해 보는 계기로 삼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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